백사마을_안광일
나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시다. 시흥시 은행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시흥시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와 결혼하기 전 서울이나 다른 수도권보다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시흥에 분양을 받았고 우리집은 그 집이 재건축이 되어 헐리기 전까지 살았다. 사실 판자촌은 어릴적 흔히 보던 풍경이었다. 돌아가신 제정구 의원이 양평 철거민들과 함께 자리잡은 복음자리가 우리집과 멀지 않았고 복음자리 뿐 아니라 한독마을과 목화마을등 철거 이주민들의 마을이 근처에 있어서 학교 통학할때마다 그 길을 지나다녔다. 초등학교 동창생 중에는 판자촌에 사는 친구도 있었고 워낙 익숙한 풍경이었기에 어릴 적 당시에는 그냥 이런 집들도 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어릴 적 보던 그 풍경들이 우리나라의 빈민운동사에서 의미있게 기록된 장소와 시간이었다는건 한참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지금은 그 모든 곳들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서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목화마을만이 유일하게 남아 우리나라의 초기 사회주택 사례의 증거가 되고 있다.
백사마을은 어릴적 학교에 오가며 보던 판자촌의 모습과 비슷했다. 언덕길을 따라 양쪽에 생긴 얼기설기 만든 집들 차이가 있다면 사람온기의 여부다. 백사마을도 재개발계획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있다. 그 계획에 국내의 내노라하는 건축가들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 계획이 어찌 그려지고 실현될지 궁금하다.
올 여름부터 서울의 여러 재개발구역을 답사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떠나고 빈집으로 남은 곳들이다. 판자촌은 너무나도 열악한 주거환경이기에 개선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지 아파트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다. 비단판자촌 합동재개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사회에는 주거양식에 대한 다양성이 너무 적다. 선택할 수 있는주거양식이 너무 제한적이다. 아파트가 아니면 정상궤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인식도 다양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예전과 같은 기록적인 경제성장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 그리고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수요요구가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파트를 개발하는 방식은 기존보다 용적률을 늘려서 늘어난 면적을 분양하여 수익을 얻어 그것으로 기존 거주자의 집까지 공급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가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수요가 높았기에 가능했던 구조다.
내가 사는 집을 내돈으로 고치고 지어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남의 돈으로 내집까지 새로 짓는 건 사실 비정상적이다. 그러한 비정상이 정상적으로 기능했던 구조적 환경은 이제 더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같이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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