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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Feb 10. 2024

소리 나는 마을 둘

구룡마을.성뒤마을_변유경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뜨거운 여름에 시작한 서울시 재개발구역 답사는 발가락이 시리게 어는 추운 날 끝났다. 시베리아 찬바람은 오늘 답사한 구룡마을과 성뒤마을에도 불어왔고, 우리는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흙길을 따라 올라갔다. 두 지역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산을 등지고 있지만 다른 재개발 지역에 비해 지대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앞 길 건너 신축 아파트단지와 더 비교되었다. 빈부격차가 한눈에 들어오는 강남의 철거촌 마을이라며 이전에도 뉴스에 몇 번 보도됐었다. 건널목 한 개를 두고 이렇게 차이 날 수 있을까?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강남의 터줏대감일 텐데. 마을 입구에는 쓰레기 처리장이 있었고, 주황색 포클레인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철거촌이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장이 들어왔을까? 소음과 냄새는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더 나쁘게 만들게 분명해 보였다. 어지럽게 쌓인 쓰레기는 구룡마을의 산만큼이나 높게 보였다. 


[사진1] 구룡마을 ©이관석


구룡마을은 다른 재개발 지역보다 훨씬 활기찼다. 마을 입구의 마을회관에는 김장 나눔, 음악회, 식사봉사 등의 활동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주변의 슈퍼 입구에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우편함도 있었다. 아마도 집배원이 집집마다 편지를 배달하기 어려워 한 곳으로 가져다 놓으면 주민들이 와서 직접 찾아가는 것 같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사잇길을 걷다 보면 아직 온기가 가득한 신발이 문 앞에 켤레켤레 놓여 있었다. 또 오늘은 토요일이라 연탄봉사를 하는 젊은 사람들로 마을이 가득 찼다. 다들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검은 팔토시를 차고 연탄을 두세 개씩 들어 옮기고 있었다. 사람도 연탄도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을이 가득 차 보였다. 봉사자들은 모여서 떠들썩하게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와,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까만 연탄과, 얼굴에 연탄이 묻은 까만 봉사자들이 함께 찍히는 기념사진은 우리 사회에 재개발 단지의 어떤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는 걸까? 


판잣집 벽에 덧대어 둔 현수막 천, 광고판, 플라스틱 비닐은 어떻게든 찬바람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수고를 보여줬다. 구룡마을의 골목은 여태껏 방문한 지역 중 가장 좁았다. 미로같이 한번 들어가면 계속 돌기를 반복해서, 정말 어디선가 불이라도 나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실제로 과거에 화재로 인한 피해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벽 곳곳에는 화재 시 나가는 길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든 미로에서 벗어나 마을 큰길로 나오기 마련이었다.


[사진2] 구룡마을의 쓰레기와 텃밭 ©이관석


구룡마을에 비해 성뒤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이미 철거된 공지에 더 가까웠다. 빈 공터에는 무단경작을 하는 텃밭이 있었고, 이 텃밭에도 경계가 있어 서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나와 너의 경작지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 텃밭 뒤에는 보상을 하라는 현수막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단결투쟁을 하자는 현수막이 걸린 그곳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룡마을과 성뒤마을은 지역적으로 멀지 않았지만, 두 지역의 차이점이 극명했다. 한 곳은 아직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 차있었고, 다른 한 곳은 현수막으로 땅값을 보상하라고 소리치는 곳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는 누군가 경작하는 텃밭이 되어있었다. 무단경작금지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누구든지 막아놓은 울타리를 넘어가서 그 뒤에서 여러 가지 채소를 키워나갔다. 그 경작의 규모와 기술이 여느 전문가 못지않아 보였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로 남겨진 흙은 사실 자연이 더 많이 들어설 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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