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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13. 2022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

노을이 쥐어준 일상 속 사색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는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스럽게  노을을 보라는 나의 손짓에 친구들은 잠깐의 관심을 가지곤 그래그래 예쁘네 하는 말과 함께 이내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내가 조금은 별난 걸까? 매일 같이 뜨고 지는 해라지만, 세상 아래 같은 장면은 없다. 모두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이는 종결을 의미한다. 마침표와도 같은 노을이 건네는 문장은 우리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시린 문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하루 끝에 노을을 보는  기념적인 시간이 종종 특별하게 여겨진다. 삶에 치여 살다보면  애틋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가는 장면인  확실하다. 하지만 거창하게 말할  없이 하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단순하게 칭한다면 가벼이 표현을 털어놓을  있을  같다. 저녁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불타는 하늘을 따라 걸었다. 건물 사이에 가려지고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이내  뜨거운 색상도 동이  것이라는  짐작했다. 빼곡한 건물 틈새로 잠시 빛났던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렸다.



함께한 저녁 속 즐거운 대화 한 조각.


오늘 하루 머리 위를 뜨겁게 내리쬐던 열기.


걷는 동안 스쳐간 풍경들.



멀어지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스쳐가고, 지나가고, 번져가고, 희미해지는 것. 단어의 의미는 다른 듯 비슷한 의미로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찰나에 불과한 오늘도 여전히 흘러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시상은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잊혔다 다시금 상기되는 걸 보면 멀어졌다 다가오는 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따금씩 노을과 같은 장면으로, 풍경으로, 파편으로 내게 화두를 던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노을도 점차 저편으로 사라졌고, 내 관심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잠깐의 감상의 시간 덕분인지 돌아다닐 힘을 얻었기에 쇼핑을 할까 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하루는 어땠는가?'에 대해 걷는 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평소보다 깊이 잠들었던 잠자리, 보통 때보다 몸을 움직일 일이 많았던 알바, 즐거웠던 저녁식사 그 속에서 나눴던 즐거운 대화들이 떠올랐다.



대표님과의 대화에선 장난스럽기도 하지만 디자인적 아이디어에 대해서 신나서 이야기할  있기에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은 사무실 청소를 했는데,  과정에서 웃기고 혼자 보기엔 아까운 요소들이 많아서 농담 삼아 스타트업 브이로그를 찍어보는  어떠냐며 서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것도 재밌겠다. 진짜 좋다. 하는 동의들이 오가면서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한번 해보자는 말과 함께 다른 대화로 옮겨갔다.



일을 마치곤 대구에서 서울까지 뮤지컬을 보러 온 친구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잠시 아픈 동안 밀려있는 일들이 조금은 눈에 밟히긴 했지만, 늘 온 신경이 그쪽으로 가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딴짓들로 삶을 구성하는 시간이 즐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음속 체증을 잠시 접어두었다. 오랜 시간 봐왔던 친구와의 대화는 역시나 평온하고 행복했다. 내가 나이게끔 해주는 이 곁에 있음에 여전히 감사할 따름이다. 차례로 나오는 요리 사이로 그간의 대화가 오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자신에 대한 이야기. 기억에 남는 말은 친구의 '체력파'라는 단어였다. 사람의 한 갈래로 기분파라는 말이 있다면, 방금 떠올리는 건데 자신은 체력파라는 말이 참 기발하게 느껴졌다. 또 자주 방전되곤 하는 내 모습이 투영이 되어 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럴 수록 더욱 체력과 컨디션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다짐을 불러오는 대화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리저리 시선이 뺏기던 정신과 눈이 피로가 쌓였는지, 몸이 방전의 신호를 보냈다. 조금은 쉴까. 갑작스레 더웠던 날이니만큼 온몸이 녹초가 되었기에 샤워를 했다. 뺏길 시선이 없이 오롯이 몸을 씻는데 집중하는 이 시간 동안은 복잡하게 얽히던 생각조차도 씻겨 내려가고 정갈해진다.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기분 좋은 충전을 했다.



샤워 후, 다시 한번 오늘 하루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곤 다음 만남을 평온하게 기약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시간을 부지런히 살아가야 할 원동력을 얻는다. 대화에서 힘을 얻게 해주는 사람들 곁에 있음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기분 좋게 책상 위의 조명을 키곤 여태 밀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막막하던 일들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다. 걱정은 막연할 때 가장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주도권을 잡고 계획을 세운다면 그 또한 어려울 것 없게 다가온다.



 계획을 어느 정도 끝내곤 최근에 구입한 책을 꺼내들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시집이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기에 포근한 문장을 상상하고 책을 펼쳤으나 생각보다 섬뜩한 저녁의 의미에 흠칫 놀랐다. 마음이 무거워져 이내 책을 내려놓곤 생각에 잠겼다. '또 한 계절 피를 흘려도 좋다'는 처절한 문장이 뇌리에 박혔다. 살아있는 것에 고통받더라도 이 또한 삶이라면 살아있는 걸 사랑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리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그 문장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꽤 오랜 시간 남아 있을 것 같다. 진한 여운을 남긴 채로, 옅게 지나가고 흐려지는 선들 사이로 진하고도 정갈한 선으로.



생명의 종결에 대해 의미하는 죽음에 대한 문장을 써내려가는 동안 시인은 어떤 마음을 안고 있었을까. 그리고 또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이리도 울렁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 거대한 파도를 표현해내고 그를 감추는 일은 또 얼마나 수없이 해왔을까.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궁금증들이 피어올랐다. 좋은 문장이 담긴 시집 덕분에 아름다운 표현을 머릿 속에 그려내고, 잠시 젖어들 수 있었다. 시를 읽는다는 것, 어렵지만 많이 알아갈수록 더 즐거워진다. 문장이 주는 울림에 감사해지는 밤이다.



2021.5.14


 새벽녘, 침대 머리 맡에 두고 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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