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무직, 그리고 마지막이길 바라는 다섯 번의 무직 상태.
경험은 많이 해봐야 좋다라며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지금 내가 얼마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그간의 좋지 않은 경험들을 얘기할 때 '아~ 이런 건 별로였는데 다음부터는 조심할 수 있으니까 좋은 경험이었어~'라고 얘기했다.
그 경험은 나에게 지나간 과거이고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한 밑거름 충분히 됐다. 반면에 듣는이에겐 지금 겪고 있는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고(특히 퇴사하고 전 직장동료들과 얘기할 때), 비슷한 경험을 겪었지만 쓸모를 전혀 찾지 못하는 경험일 수도 있는 거다. 혹은 다양한 경험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경험은 많이 해 볼수록 좋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경험이 쓸모 있다는 건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더라는 거다. 그리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일정 기간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거기에 지금은 모른다. 다시 말해 쓸모없는 경험일지라도 1년 뒤, 5년 뒤, 15년 뒤, 죽기 전까지는 한 번은 쓸모를 느끼지 않을까. 그렇다면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건 맞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그럼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나오지 않을까.
쓸모없는 경험도 쓸모를 찾아 긍정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세상의 잣대를 다르게 보려 하면 살짝 여유가 나온다. 근데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경쟁사회에서 금전적인 여유는 곧 마음의 여유와 직결된다. 다수가 정해준 표준을 벗어나 손가락질받아도 '난 괜찮아'라고 꿋꿋이 여유 있는 웃음을 짓기란 힘들다. 그래서 쉽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재미를 찾아 살아!', '너만의 길을 가!'라는 막연한 희망만 가득한 이야기는 못하겠다.
하고 싶은 일, 재미를 찾아 떠나는 길, 나만의 길을 구축한다는 건 마음가짐으로만 되는 건 아니다. 물론 굳건한 확신과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두리뭉실한 솜사탕 같은 마음은 조금만 거들면 금방 으스러지기 마련이다.
나는 다수가 말하는 일반적인 삶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직업도 없고, 일정한 급여도 없고, 아이도 없고, 연금도 없고, 저축도 없고, 결혼식도 안 하고, 인프라도 좋지 못하는 곳에 사는 그런 사람이다.
대신 매일 같이 반려견과 동네 산책을 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귀찮지만 텃밭을 일구며 수확물로 어떤 요리를 할지 레시피를 저장해놓는다. 그리고 정원을 가꾸면서 10년 뒤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인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는 상상을 하며, 간간히 휴식을 취하거나 이야기 꽃을 피우기 위해 온 손님들과 수다를 떨고, 심야 글쓰기를 즐기고, 보이차나 위스키를 마시며 올드팝을 듣는다.
나는 다행히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부려먹고 있다. 가족, 일, 연애, 결혼, 가치관.. 어떤 경험에서 찾았는지 조금씩 써내보려고 한다. 사실 요즘 너무 일찍 잔다. 아쉬운 밤을 쉬이 보내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심야 글쓰기도 시작할 겸, 민박 게스트에게 하고 싶은 얘기인데 예약 손님이 뜨문뜨문해서 글로 수다를 대신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