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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티제빅 Oct 21. 2022

Pale Blue Dot(창백한 푸른 점)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인류,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

오래전 감명 깊게 본 다큐멘터리가 있다. 유명한 우주과학 서적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우주과학의 보급에 힘썼던 '칼 세이건'에 관련한 영상이었다. 나는 과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문계 출신에, 대학에서도 이공계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를 전공했지만, 과학과 관련한 책이나 영상은 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지내던 호기심을 쿡 찔러 꺼내곤 하는 것 같다. 그 영상을 본 날도 유독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를 보며,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와 같은 철학적인 생각에 빠져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잡념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시각에 우연히 보았던 칼 세이건의 다큐 영상은 머릿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인류는 서로 배려하고, 돕고, 사랑하기도 하지만, 서로 배신하고, 갈등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조직문화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범위를 조금 좁혀보자면 회사 내에서도 직원들은 서로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고, 칭찬하며 지내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미움과 갈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소한 이유로 갈등 관계가 조성되기도 하고, 서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소위 인맥을 활용한 사내 정치를 하기 위해 줄 세우기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누구나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행동들을 우리들은 조직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



1977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매리너 계획의 일부로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를 발사한다. 보이저 1호는 1차적으로 목성과 토성을 촬영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그 이후 계속해서 태양계의 행성을 관측하며 태양계 끝으로 가고 있었다. 이 매리너 계획에 참가하였던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138AU(1AU =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 즉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의 138배 떨어진 거리라는 뜻)를 지나는 시점이었던 1980년에 기존 계획에 없었던 제안을 한다.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촬영하고 싶습니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목성의 대적점(1979. 2.25) (출처 : NASA  -  http://photojournal.jpl.nasa.gov/)


보이저 1호가 촬영한 토성 (1980.11.6) (출처 : NASA  -  http://nssdc.gsfc.nasa.gov/)


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 당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발사해서 정상적으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움직임을 섣불리 잘못 움직였다가 발생할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두 번째로 카메라가 지구 쪽을 바라보다 태양을 바라보게 되면, 그 빛으로 인해 카메라 렌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칼 세이건의 첫 번째 제안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로부터 9년 뒤인 1989년에 다시 한번 나사를 제안하여 설득에 성공하였고, 마침내 인류 역사상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이동하여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카메라로 지구를 촬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이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Pale Blue Dot' (출처 : NASA - https://visibleearth.nasa.gov/)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먼지만큼 작은, 마치 화면의 1픽셀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이 작은 점에 불과했다. 한 때 우리 인류는 우주가 지구 중심으로 돌고, 마치 인류가 우주의 주인공인 것 마냥 착각하며 살아온 시기도 있었지만 광활한 우주 안에서 바라본 우리 지구의 모습은 바로 저 '창백한 푸른 점'일뿐인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칼 세이건 저서 '창백한 푸른 점' 중에서)


인류라는 큰 공동체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저렇게 작은 점 안에 살고 있는 보잘것없는 먼지 수준의 존재임에도,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싸우기도 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 지구를 보면, 우리가 저 작은 공간에서, 그 찰나 같은 시간에,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고 즐거워할 시간마저 부족할 텐데, 굳이 다투고 갈등하고 싸울 필요가 있을까. 


범위를 좁혀서 우리나라, 우리 회사, 가족,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내가 조금 배려하고, 우리가 조금 양보하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와 이웃을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 먼지같이 작은 우리의 존재를, 찰나와 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고 빛이 나는 순간으로 남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내가 하는 일, 우리가 하는 일은 나와 가족뿐 아니라 동료에게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칼 세이건이 그토록 많은 반대와 위험을 무릅쓰고도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촬영하고 싶어 했던 이유가, 이기심에 서로 다투고 시기하기에 바쁜 우리 인류에게 이와 같은 조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서였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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