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월이 꽤 설렌다. 한 해를 시작한다는 점도 있지만, 내 생일이 있다는 점이 더 크다. 어렸을 적에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는 부모님께 선물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삼 남매의 어떤 조르기 스킬에도 완강히 지갑을 열지 않던 엄격한 부모님에게서 레고나 해리포터 전권 같은 큰 선물도 받아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생일의 의미가 퇴색되어만 갔다. 용돈 받기도 눈치 보이는 나이의 생일들은 마냥 즐겁진 않았다. 학교생활을 활발히 할 때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전시된 축하 메시지들이 괜스레 뿌듯하기도 했지만, 취준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오히려 생일이 부담스러웠다. 지갑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나도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친한 친구나 연인이 차라리 선물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주변 친구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못하니 해마다 내 생일 축하를 받는 일도 줄어들었다. 어차피 생일도 인생의 수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으며, 생일에도 진심으로 감흥이 없어졌다.
그러다 작년엔가, 친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생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곤 생각을 바꾸었다. 내 생일을 앞두고 뭘 할 건지, 뭘 갖고 싶은지,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묻길래 '근데 생일 뭐 별거 있냐? 똑같지 뭐.'하고 심드렁한 말을 했었다. 친구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일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날이라 본인이 특별한 기분이 들어 항상 설렌다고 했다. 자기는 뭘 먹을지, 뭐가 갖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생일 일주일 전부터 생각해둔다고 했다. 그렇게 신나나 들뜨는 목소리가 좀 귀엽다고 느껴졌는데, 큰 의미 없이 해맑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친구의 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간혹 조금이라도 자신의 특별함을 어떻게든 강조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을 보면 주로 '어리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누구나 특별하게 여겨주는 것이 당연한 생일마저 그렇게 강박적으로 특별하길 거부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생일에 정작 나 자신에게 축하를 해 본 적이 있던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원하지 않는데 태어난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지껏 의문이기에 (그리고 좀 오글거리니까) 결코 그래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인생을 어차피 살아내야 한다면, 생일 하루만큼은 그동안의 인생을 살아온 자신에게 격려를 보내보는 것이 남은 인생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작년 생일에는 처음으로 주변에 '나 곧 생일이에요'를 꽤 얘기하고 다녔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만난 지 얼마 안 된 직장 동료가 마치 의식한 듯이 기프티콘을 보내줘서 조금 머쓱하고 웃겼던 기억도 있다. 정말 예상치는 못하게도 친구네 집에서 깜짝 생일파티를 당하기도 했다. 올해는 그렇게 생일을 홍보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작년보다 풍부한 생일을 보냈다. 음.. 생각해보니 선물보단 축하 인사를 받고 싶어서 단톡방에 셀프 생일 축하를 하긴 했다. 선물도 좀 받았는데 유독 주변에 12월생 친구들이 많았어서 뿌린 만큼 거둔 것인가... 아무튼 내가 내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만큼, 주변 사람들의 생일도 열심히 챙겨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신년 계획에도 넣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