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나를 통제하려 들었다.
그때는 단순한 성격 차이쯤으로 넘기려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분명 경계 침범이었다.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두 번째 식사자리였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시어머니는 나를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내 패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신발 가게로 끌고 갔다.
내가 신고 간 건 닥터마틴 부츠였다.
겨울이었고, 단정한 옷차림에 포인트를 준 정도였다. 긴치마에 가려 부츠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누가 봐도 과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이건 아니지~” 하며, 반짝거리는 신발을 내밀었다.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촌스럽고 과한 장식의 신발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감사하지만, 저는 괜찮아요.”라고.
그러자 시어머니는 끈질기게 말했다.
“아니야, 지금 입은 옷에는 이게 더 잘 어울려. 딱 한 번만 신어봐.”
당시 약혼자였던 남편은 귓속말로 말했다.
“그냥 받아. 안 그러면 엄마 계속 그래.”
하지만 나는 그때, 왠지 이 선을 넘기면 평생 이렇게 끌려다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끝까지 거절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내게
“너 고집 진짜 세다.” 며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냈고,
남편과 시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불쾌한 말을 했다.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여리여리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 좋아해. 투박한 건 안 좋아하거든. 어릴 때도 항상 ‘나는 엄마처럼 예쁘고 여성스러운 여자랑 결혼할 거야’라고 했어.”
…응?
뭐 어쩌라고?
그 말은, 지금 내가 ‘여성스럽지 않고 투박하다’는 뜻인가? 내가 신은 부츠 하나로, 내 전체 이미지를 그렇게 판단하는 건가?
나는 그날 단정하고 차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저 부츠를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예쁘지 않은 여자’로 낙인찍힌 느낌이었다. 불쾌함을 애써 눌렀고, 그날은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가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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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라는 무기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날 밤에 벌어졌다.
남편에게 다급히 전화가 왔다.
“엄마가 너 잘 들어갔냐고 왜 전화 한 통 안 하냐고 하셔. 그게 어른을 향한 기본 예의 아니냐고 엄청 화가 나셨어. 우리 엄마한테 지금 연락 좀 해줘. ”
그때부터였다.
시작되었다.
‘기본’을 강요받는 일들.
어디까지가 기본이고,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그 기본이라는 게 정말 ‘배려’인지,
아니면 ‘통제’를 포장한 말은 아닌지.
그 당시에는 몰랐다.
결혼 전이었고,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기에 헤어질 때 인사를 했으니 재차 연락을 하는 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나를 유치원생 가르치듯
“어른이랑 헤어졌으면 잘 들어가셨냐고 연락을 해야지, 그게 기본 예의란다.” 라며 나를 훈계했다.
내가 이혼가정에서 컸다고 하니
못 배워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가스라이팅처럼
내가 못 배워서,
예의가 없어서,
개념이 없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불쾌감을 느끼며 깨달았다. 이 관계는 단순히 ‘가족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나를 바꾸려는 시도’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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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시작은 사소했다.
신발 하나, 전화 한 통.
하지만 그 안에는 경계 없는 개입과
일방적인 기대가 있었다.
그저 새로운 가족이 되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무례가, 너무 빨리 건너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이 말이 있었다.
“그건 기본이잖아.”
그 ‘기본’이라는 말이
어떻게 나라는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를 천천히 지워가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