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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ventureJIEUN Aug 13. 2019

웅장한 협곡 한복판에 서다

[Coyote Gulch 두번째 이야기] 카요리걸치 Utah, USA.

 " 살면서 거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리만큼 큰 암석들 사이에 둘러싸여 볼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자연 속에 내던져지면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에 와있는 기분이라고. 근데 웃긴 건 이게 다른 세상이 아니라,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이었다. 지구. "

하이킹하면서

2019.06.06 ~ 2019.06.10 

Coyote Gulch, UT [ Jieun With Jeremy , Kelson ,Calvin  ]


1.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것

 기린 모양의 거대한 바위. 그것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협곡 속으로 들어와 있다. 지난밤의 모래언덕은 잊어 버린 지 오래다. 이제 며칠간 이 거대한 암석들 사이에 둘러싸여 협곡을 탐험하는 일만 남았다. 주황빛의 거대한 돌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얼마나 한없이 작은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실감이 난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옆에서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눈에 한 번에 담아지지도 않을 정도로 큰 암석. 이 모든 것들이 그 날 하루를 설레게 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 아침에는 간단하게 오트밀을 먹었다. 서양식 죽 같은 느낌인데 

저기 뒤 기린 머리 형상의 암석이 보인다

사실상 나는 별로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따뜻한 딸기맛 오트밀. 제레미와 캘슨은 맛있다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우리는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짐을 두고 마실물과 간단한 스낵, 에너지바를 작은 가방에 챙겨 탐험을 떠날 채비를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한복판에 텐트와 옷, 남은 식량, 그리고 가방을 두고 가도 괜찮을지, 누가 지나가는 길에 보고 가져가지 않을까 싶었다. 이에 대해서 제레미가 말했다.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사람들이 지나가도 오지인 이곳에서 누군가의 텐트의 물건을 훔치는 것 자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숨을 가져갈 수 도 있는 것이기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고. 

우리의 베이스 캠프와 그 주변


2. 물을 따라서 

 시원하다. 찰방찰방 얕은 물을 만나면 물속으로 걸었다. 걸어가면서 폭포 여러 개를 지나쳤다. 나중에 이 폭포들이 나를 위한 샤워장이 될 줄 이때는 상상도 못 했었다. 씻는 문제는 생각도 못해보고 무작정 떠난 캠핑이었다. 폭포를 지나고 암벽을 올라가고 물을 오른편에 두고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큰 암석 다리를 만나기도 하고 커다란 아치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강이 구불구불 흐르는 특성을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암석이 파악했나 싶을 정도로 물과 함께 고스란히 흐르듯 자리 잡아 있다. 그 구부러진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단 하나의 암석으로만 이루어져 있는지. 그 아무도 직접 와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그 거대함은 감히 카메라로는 담아지지가 않았다. 통신도 빛도 아무것도 없는 바로 이곳에 서서 그 구부러진 물줄기와 이를 따라가는 그 암석을 보고 있노라면 이 곳에 바로 자연이 주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냥 그래 자연, 자연. 이 우람한 협곡 한복판에 나 자신이 내던져 있구나. 

물이 구불구불 흐르듯, 돌도 물을따라 돈다.  가운대사진은 자세히 보면 아치형으로 깍여진 암석으로 아래로 물이 흐른다.


3. 작열하는 태양, 못 참겠다.

 한국에서 장마철 더위, 여름철 더위가 습해서 찜통더위라면, 이곳은 burning. 구워진다. 그야말로 누군가가 나를 토치로 지지는 듯한 아픈 더위다. 햇빛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겨 있나 의심이 될 정도로 따갑다. 따가운 햇살이라는 표현이 왜 생겨났는지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숨어있는 블랙 라군을 향해서 걷던 우리는 반가운 폭포를 만났다. 폭포가 내려와서 흐르는 물의 틈이 바위틈이라 좁고, 그곳은 마치 작은 엔텔롭 캐년과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더위를 내려놓고자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캘슨, 캘빈, 제레미 모두 웃통을 벗고, 바지도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으로 그냥 물을 즐겼다. 

물놀이를 즐긴 작은 폭포와 폭포 근처 뾰족한 바위산

 처음에는 나도 폭포 바로 옆에서 시원한 물의 기운을 느끼끼며 앉아 있다가 엉덩이가 도저히 뜨거워서 물속으로 냅다 들어갔다. 이렇게 물놀이 시간을 보내고 올라가니 우리 말고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 계곡에서 다들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번 캠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4. 블랙 라군

블랙 라군의 모습

 이곳에 숨은 검정 보석, 블랙 라군. 블랙 라군을 가는 길은 모래언덕이 생겨서 모래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정말이지 모래 언덕은 너무나도 힘들다. 푹푹 빠지는 발. 그리고 극도로 뜨겁다. 우리는 물을 거닌다고 크록스나 아쿠아슈즈 등을 신었는데 구멍 사이로 모래가 들어오면 너무 뜨겁다. 운동화만 가지고 온 캘슨은 신발이 젖는 것이 싫다고 맨발로 걸어 다녔는데 모래 위에서는 아예 걷지 못했다. 우리가 양말을 빌려줘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작열하는 태양빛에 달궈진 뜨겁운 모래언덕이다. 우리가 걷는 중간중간 캘슨을 위해서 디딜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줬다. 그렇지 않고선 정말 5초도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뜨거운 언덕을 지나 도달한 블랙 라군. 카약이 있다면 라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 누구도 저 암석을 돌아서 보이는 라군의 풍경을 볼 수 없겠지. 

도마뱀 두마리와 뱀

블랙 라군이라는 이름에 맞게 물이 검은색으로 보인다. 아마 암석의 검은색이 비쳐서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았다. 물이 검은색으로 보이다 보니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물속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이롭고 무섭다. 그 무서운 물 속에 어떤 생명이 자라고 있을지 나도, 우리 일행도 아무도 모른다.  

 블랙 라군을 감상하고 가려는데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았다. 뱀이 도마뱀을 사냥해서 똬리를 틀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옆에는 그 도마뱀의 친구인지, 또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자신의 친구를 먹고 있는 뱀을 보면서 도망가야 한다. 그 도마뱀은 뱀을 계속 지켜보면서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렇게 오분이 넘는 뱀과의 눈싸움 끝에 갑자기 도마뱀이 뛰어갔고, 살아남았다. 그 도마뱀에게는 얼마나 두려웠던 순간이었을까. 두 도마뱀의 생사가 극명히 갈려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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