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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ventureJIEUN Aug 27. 2019

첫 이별이 내게 남긴 것은.

첫 이별, 그 후의 이야기.

 20대 초반을 함께한 친구가 있었다. 5년간의 연애의 종지부는 갑작스러운 이별로 마무리되었다. 첫 연애이자 첫 이별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지금에 와서야 그때를 생각해 보면 이별이 남긴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첫 이별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당시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었기에 현실을 부정해보기도 했고, 붙잡아 보기도 했고, 구질구질하다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어떻게 해서든 이별을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연애 당시에 비성숙했던 연애를 했던 것은 분명했다. 나도 이제 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은 거머쥔 20살짜리 였고, 처음으로 해보는 연애는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5년이나 함께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은 결국에 찾아왔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던 나는 생각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사람마다 이별에 대한 태도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처한 환경, 입장, 연애기간, 상대방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별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어떤 사람은 슬프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속이 시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담담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슬프고, 공허했고, 힘들었으며 그 친구가 없는 삶이 무서웠고 불안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냐면, 친한 친구가 걱정된다고 2주간 우리 집에서 출퇴근을 할 정도였다. 매일을 날 재워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니 나도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한 순간에 모든 감정과 미련이 떨어져 나갔다. 갑자기 누가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모든 게 그냥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니 조금 멀찍이서 내 지난 연애와 이별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겼다. 최선을 다해서 연애했고, 최선을 다해서 붙잡았으니 후회도 미련도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고 모든 게 담담했다. 

 그렇게 멀찍이서 돌아보니 조금은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첩은 따로 정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사진을 지우는 것은 마치 내 20대 초반의 모든 추억을 지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추억은 추억으로 내 20대 초반은 그냥 20대 초반의 연애 중이었던 내 모습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연인 관계라는 게 얼마나 끈끈해지고, 소중해질 수도 있지만 또 그와 동시에 얼마나 남루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헤어지자"라는 한마디면 순식간에 남이 된다. 그간에 함께 한 시간들은 이제 저편으로 가고 각자 모르는 사람처럼 돌아서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 말을 내뱉는 그 순간부터 죽고는 못살았던 사람들이 이젠 만나면 어색해지고, 모르는 사람이 돼버리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돌아서도 함께했던 시간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이도 저도 아닌 곳에 언젠가는 펼쳐볼까 말까 하며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론 그 당시의 비성숙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던 내 모습이 예뻐서, 즐겁고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것이다. 각 나이만큼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연애의 모습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첫 이별이 내게 남긴 것은 처음에는 큰 상처였고, 이것이 치유되고 자그마한 흉터를 남겼다. 평상시에 내 흉터가 어디 있나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이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생활하게 된다. 그래도 그때를 회상하게 만드는 계기가 내 몸에 있으니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때를 곱씹게 된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때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지금은 그때보다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라는 관계의 틀 안에서 상대방 때문에 성장하는 기분이 들고, 상대방을 내 맘대로 쥐고 흔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서로의 모습을 바꾸려 들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 이별, 한 번쯤은 찾아오는 이별은 결코 그 순간만의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서 앞으로의 나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별을 '아름다운' 이별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슬펐던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별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를 통해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아픈 이별을 겪는 누군가에게도 시간이 흘러 담담해질 수 있을 때가 찾아오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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