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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ventureJIEUN Oct 03. 2019

나는 엄마에게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삼킬 수밖에 없는 말 한마디. 보고 싶어, 엄마.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특히나 해외에 나와 있으면 엄마가 그리울 때가 많다. 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은지,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내 엄마니까.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 품이 그립고, 엄마 품에 안겨서 맡았던 엄마 냄새가 그립고,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 매운 손이라도 그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던 그때의 엄마와 나를 상상하면 당장이라도 엄마 곁으로 달려가고 싶다. 엄마와 함께 들었던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서 흘러나오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아니면 멍하니 그 노래를 따라서 엄마와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장소로 돌아가게 된다. 노래가 끝나면 촉촉한 눈망울과 뜨거운 콧 시울로 다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엄마는 이곳에 없다. 나 혼자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엄마가 자주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 엄마랑 주말마다 나가서 쇼핑했던 것, 영화관에 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 함께 맛집을 찾아가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것, 엄마랑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던 것, 엄마가 화내면 왜 화내냐며 엄마한테 달려들어 같이 화낸 것, 출퇴근 자동차 안에서 엄마랑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은 것. 소소하고 작은 일상에서부터 즐거웠던 추억들까지 모든 것들을 엄마와 자주 그리고 함께 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도 문뜩 엄마가 자주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한테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엄마를 보고 싶다. 당연히.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다. 그래도 감히 엄마한테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엄마를 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쏟아진다. 내 그리움의 감정이, 내 눈물과 콧물이, 모든 촉촉한 감정들이 다 쏟아져 나와 추스르기 힘들다.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닌데도 힘들다. 엄마와 물리적으로 이렇게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진 적이 있던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보면 엄마의 생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이미 엄마를 멀리 보낸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울지는 상상조차 힘들다.

 엄마라는 존재는 대단하다. 어딜 가든 이렇게 내 마음속에서 그리움으로 가득하니 말이다. 엄마와 아무리 통화를 하고 메신저를 주고받아도 풀리지 않는다. 감히 엄마에게 보고 싶다는 말은 못 하는데,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엄마도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눈치.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서로 미치도록 보고 싶을 것을 알기에 애써 보고 싶은 감정을 외면하려 한다.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드니까 참을 수밖에 없다. 삼킬 수밖에 없는 한마디, 보고 싶다는 말을 가지고 우리는 밀고 당긴다. 이 말을 꺼내? 말아? 하면서 꺼내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말이 이렇게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단어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서로가 눈 앞에 있어야지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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