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현 Jun 11. 2020

도서관에서 읽을 책 고르기

대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02

표지 이미지 - Pixabay. AhmadArdity. 2020. 6. 10


  도서관은 나에게는 무척 특별한 곳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엄청난 다독을 하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책은 언제나 늘 가까이 머물던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시립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 보았고, 중학교 시절에는 학급 도서를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지를 만든답시고 학교 도서관을 야간에 통째로 대여해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대학에 진학한 후, 대학 도서관은 제게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 먼지 쌓인 책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요!(누구나 특이한 점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학교 1학년 시절, 수강신청의 실패로 동기들과 함께 수강하는 수업이 거의 없던 저는 혼자 캠퍼스를 돌아다닐 때가 많았습니다(1999년이나 지금이나 1학년 학생들의 수강신청은 언제나 바늘구멍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발길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무엇인가 딱 찾아볼 책이 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뭐 읽을만한 책 없을까?" 정도의 기분으로요. 서가를 돌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바닥에 그냥 주저앉아서 한두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저만의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책 고르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독서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처럼, 책을 고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도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혼용하여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재미있는 방법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 고르는 법이기도 합니다. 바쁜 학교생활 중, 거짓말 같이 시간이 비는 날이 있다거나, 애매한 공강 시간 때문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이 된다거나, 더운 여름날 쾌적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지적인 유희를 좀 해보고 싶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날이 있다면 주저 말고 도서관으로 걸어가세요(도서관이 없다면 대형 서점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 방법을 쓰기에는 제약이 좀 있습니다).


1. 000부터 시작한다.

  대개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면 내가 찾는 분야의 책을 검색하여 해당 분야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뷔페를 가면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먹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일단 성급하게 음식을 뜨기보다는 전체 분위기를 보며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편입니다. 음식이 들어갈 위장의 넓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마구 담으면 즐겁게(?) 먹을 수 없잖아요. 책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통해 목적으로만 책을 선택하면 재미없죠. 000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도서관은 도서 분류법에 따라 도서가 분류되어 있습니다. 숫자가 나름의 의미가 있죠.  물론 꼭 알아두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 첫 서가부터 돌아보아도 되거든요. 도서관 서가의 시작은 보통 000으로 시작하는 총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빠르게 꽂혀있는 제목들을 읽어나가며 나의 흥미를 끄는 책이 있나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이 책 제목부터 신경을 써서 눈에 띄게 만들어놓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의도를 오롯이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욱 돌면서 유난히 학문의 이름이나 책의 제목 등이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일단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즉 드디어 그 책과 내가 만나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저는 그 책을 꺼내어 펼쳐보게 됩니다.

Pixabay. Mystic Art Design. 2020. 6. 11

2. 책을 꺼냈다면, 목차를 살펴본다(혹은 후루룩 넘기면서 적당한 페이지를 살펴본다).

  하지만 그 책과 만나는 그 장엄한 순간이 꼭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닙니다. 살펴보니 이름만 거창한 책인 경우도 많고 아니면 내용에 따라서는 너무나도 오래되어 크게 참고하기 어려운 책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그냥 내 기분이나 취향에 안 맞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일단 패스해야 되겠지요. 


  책의 목차는 책 전체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장치입니다. 같은 제목의 책이라도 목차를 살펴보면 상당히 다른 구성과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목차를 살펴봅니다. 책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내 흥미를 당기는 목차가 있어야 합니다. 살펴보니 크게 흥미를 끌지 못하는 내용이라면 이 책과의 인연은 거기까지. 언젠가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지만 현대 발간되는 책의 수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 책은 다시 책꽂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중에 필요한 사람을 위해 책의 분류번호에 맞게 제자리에 꽂아두는 게 필수적인 매너겠지요?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책이 더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가 모두 흥미롭게 여겨질 때도 있고,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강렬하게 내 마음을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그 책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목차가 흥미롭게 보인다면 일단 책장을 덮고 그 책은 따로 빼내어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웁니다. 일단 책꽂이를 벗어나 더 살펴보기로 결심한 셈이지요. 일부분만 살펴보고 싶은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일부분이 만약 한 챕터 정도의 양에 해당한다면 역시 그 책은 손에 들어야 합니다. 선 상태에서 오래 읽기는 피곤한 편이죠. 만약 특별하게 한 두 페이지 정도만 강렬하게 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면, 그 책은 굳이 손에 들지는 않습니다. 옛날에는 도서관 안에 비치된 유료 복사기를 이용해 한 두 페이지만 복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죠. 스마트폰으로 그 책의 표지와 해당 한 두 페이지 정도만 사진으로 찍어둡니다. 물론 그 분량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찍는 것보다 그냥 따로 드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이 목차 살펴보기 방법은 소설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설은 일정한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입니다. 갑자기 중간의 한 두 페이지를 본다고 전체의 분위기나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렵지요. 옴니버스 구성이 아닌 이상 소설의 경우 좀 더 시간을 들여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목차보다는 앞부분을 좀 더 살펴보는 것이 낫습니다.


3. 마음에 드는 목차를 찾아가서 1-2페이지를 읽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마음에 드는 목차를 찾아 책을 약간 읽어보는 것도 책을 고르는 흥미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관점이나 문체는 일부분만 읽어도 상당히 많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을 찾아 몇 페이지 정도를 빠르게 읽어보는 것은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해줍니다. 이는 책 내용의 장르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면 소설대로 작가의 문체를 알 수 있으며 교양서적 역시 책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4. 이제 옆으로 이동하며 다른 책을 찾는다.

  방금 서가에서 꺼냈던 책을 다시 돌려놓았던, 손에 들었든 간에 다시 옆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1~4의 반복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여러 서가를 오갈수록 점점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책들을 다 잡을 수가 없어서 두 손으로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더 이상 들 수 없을만한 상황이면 책을 그만 고르면 됩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 그만큼 책을 고르는 기준이 엄격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의 경우 이런 상황까지 오면 보통 10권 안팎의 책이 선정 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5. 책을 들고, 근처 빈자리에 앉는다.

Pixabay. Kari Shea. 2020. 6. 11

  이 모든 책을 모두 대여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집에 이렇게 많은 책을 다 가져가 봐야 다 보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죠. 이제 앉아서 골랐던 책들을 하나씩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책에 따라서 첫 챕터를 보는 경우도 있고, 가장 관심을 끌었던 챕터를 읽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냅니다.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책은 옆으로 빼둡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나중에 나가기 전에 제 자리에 가져다 두는 것이 이용자로서의 매너겠지요(이것이 어려울 땐 읽은 책을 올려두는 공간이 대개 대학 도서관에는 있습니다. 그럼 정리해주는 분이 나중에 정리를 따로 해주시기도 합니다. 오히려 잘못된 장소에 꽂아두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책을 못 찾는 문제가 생기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좀 더 여유 있게 자세히 읽어본 결과 역시 몇 페이지나 일부 문장만 마음에 든다면 휴대폰으로 찍어두거나 메모 정도만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 지면 그 책들만 골라서 대출 창구로 가서 대출을 합니다. 서점이라면 이렇게 할 수는 없겠죠.


6. 만약 시간이 부족한 편이라면?

  기본적으로는 도서관의 제일 첫 서가부터 마지막 서가까지 돌면서 이런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이 아주 넓거나, 시간이 제한적이거나, 혹은 아무리 살펴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분류에 억지로 노력을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평소 자주 접하던 학문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도 접하고 싶다면 과감하게 생소한 분야의 책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위 방법을 사용해도 됩니다. 가령 교육학이 궁금하다면 교육학 분류의 서가에서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요. 지난번에는 교육학 쪽을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외국문학 쪽을 살펴보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독서가 유익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자기 계발도 할 수 있으며 간접 경험도 할 수 있고, 저자와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재미"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책도 재미있으면 읽습니다. 공부도 재미있으면 정말 열심히 하게 됩니다. 고상한 척할 필요 없이 손과 눈이 가는 대로 책을 읽는다면 순수하게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이제 자신의 관심사나 전문분야로 자연스럽게 더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벼락치기 공부 이해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