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Jul 06. 2021

길을 잃었다

그대로

길을 잃었다. 어찌할바를 몰라 맴맴 돌다 새벽에 기억의 강을 건넜다.


익숙한 동네의 향기가, 기억이, 추억의 자성이 그냥

그곳으로 인도했다. 다신 가지 않겠다던 동네에

잠시 머물며 세월과 사람에 치인 볼품없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봤다.


어쩌면 기억은 뇌에 저장되는 게 아니다.

그건 오히려 내 피부에, 핏속에, 마음에 저장되고 각인된다


매일 잊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살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툭툭 치고올라오는 경멸의 순간과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내 존재의 원형은 무엇인지 답없는 질문들이 뇌뒷편에서 스멀 스멀 올라올 때면,

난 그 고통스러운 쾌락의 댓가로 잠을 반납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거늘,

지금 나의 성적표는 노력요함이거나 기대이하다.

살제 살면서 그런 성적표를 받아본 적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점수를 숙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을 줄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수술했던 부위는 가끔 어떤 시간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나를 옭아매고 숨을 짓누른다.


졸램과 데메롤을 더 달라 했다 아니 조금 더 강하게 달라했다

다시는 운전 중에 차가 멈춰 공간이 조여드는 느낌의 차사고를 당하고 싶지 않다.

땅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밤이다.

이름 석자가 부끄러운 밤이고,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밤이다.


폰을 뒤적이다. 돌과 철로 만든 이우환의 구조물에 빛이 갇힌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우주에서 쏘아올린 광활한 태양 광선을 자신의 터로 품어소멸시키고 있었다.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빛 조차도 자신의 길을 잃은 날이었다.

입에 대지 않던 담배를 태웠다. 하루에 한갑 두갑

세알의 약과 담배  모금  맛이  달다.

작가의 이전글 [#플레이리스트 #그냥 6편] 이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