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길을 잃었다. 어찌할바를 몰라 맴맴 돌다 새벽에 기억의 강을 건넜다.
익숙한 동네의 향기가, 기억이, 추억의 자성이 그냥
그곳으로 인도했다. 다신 가지 않겠다던 동네에
잠시 머물며 세월과 사람에 치인 볼품없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봤다.
어쩌면 기억은 뇌에 저장되는 게 아니다.
그건 오히려 내 피부에, 핏속에, 마음에 저장되고 각인된다
매일 잊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살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툭툭 치고올라오는 경멸의 순간과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내 존재의 원형은 무엇인지 답없는 질문들이 뇌뒷편에서 스멀 스멀 올라올 때면,
난 그 고통스러운 쾌락의 댓가로 잠을 반납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거늘,
지금 나의 성적표는 노력요함이거나 기대이하다.
살제 살면서 그런 성적표를 받아본 적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점수를 숙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을 줄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수술했던 부위는 가끔 어떤 시간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나를 옭아매고 숨을 짓누른다.
졸램과 데메롤을 더 달라 했다 아니 조금 더 강하게 달라했다
다시는 운전 중에 차가 멈춰 공간이 조여드는 느낌의 차사고를 당하고 싶지 않다.
땅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밤이다.
이름 석자가 부끄러운 밤이고,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밤이다.
폰을 뒤적이다. 돌과 철로 만든 이우환의 구조물에 빛이 갇힌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우주에서 쏘아올린 광활한 태양 광선을 자신의 터로 품어소멸시키고 있었다.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빛 조차도 자신의 길을 잃은 날이었다.
입에 대지 않던 담배를 태웠다. 하루에 한갑 두갑
세알의 약과 담배 한 모금 그 맛이 참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