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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l 24. 2021

[도시 속 음악] 런던, 열대야 그리고 플레이리스트

2009년 여름의 기억을 시작으로

*이 글은 서울 책보고 웹진 5호에 게재했던 것을 브런치에 맞게 재구성했습니다


2009년 6월 어느날, 그때는 무일푼 실업자였다. 당시,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쓰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몇군데 합격소식을 듣고, 마음의 안도를 찾았다. 대학교 때부터 내 기질을 알았던 친구 한명은 나에게 선물하겠다며, 당시 거금 300만원을 내 통장에 보내줬다. 안 갚아도 된다며 맘 고생 많았다며, 하고 싶은거 다 하라고.

난 그냥 무작정 런던으로 떠났다. 2008년 배낭여행 이후, 허영심에 쩔었는지, 음악적 아쉬움을 충족시키지 못했는지, 난 갑자기 생긴 300만원의 여윳돈으로 런던을 찾았다. (물론, 이 돈은 회사에 들어가서 모두 돌려주었고, 난 아직도 그 친구의 은혜를 칭송한다.)


2009년 7월 1일 그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런던에서 지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런던에서 한량처럼 보냈다. 내 소울 아버지 마이클 잭슨을 추모했으며, 피카딜리 서커스를 미친 놈처럼 돌아다녔으며, 이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을지 모를 수 많은 인연들의 흔적에 내 흔적을 얹혀놓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사람에게 첫 경험와 그와 관련된 기억은 특별하다지만, 나에게 런던은 첫 경험보다 두번째로 머문 2009년을 중심으로 생겨났고, 그 때의 기억과 관성으로 매년 런던을 찾게 되었다. 우중충하고 습했던 런던의 2009년 7월 그리고 12월. 그 때가 비로소 내가 런던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기 시작했던 시간이었다.

자주 찾을 때는 매년 두번 혹은 세번... 그렇게 난 런던에 일부가 되려 애썼다.

서울 책보고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오랜만에 음악으로 글을 쓰려니, 막상 언제의 기억을 끄집어 내야할지 막막했다. 2009년부터 내가 지낸 런던의 어느날들을 기억했다. 런던의 여름, 겨울, 가을, 엄마랑 찾았던 봄 그 어느 날 중 하나의 기억을 무덤덤하게 썼다.


습하고 뜨거웠던 런던 어느 날,

열대야를 수놓았던 음악들


음악적 보고이자 영감의 인큐베이션 런던.

‘퀸(Queen)’,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전설적인 팝스타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DNA를 발현시킨 곳이며, ‘에드 시런(Ed Sheeran)’, ‘앤 마리(Anne-Marie)’, ‘두아 리파(Dua Lipa)’ 등과 같이 재능 많은 아티스트들이 끊임없이 출현하는 도시 런던.

▶ 애비 로드 스튜디오 앞 횡단보도


구글맵을 켜고 런던을 한번 훑어본다. 도시 북서쪽에는 비틀즈, 마돈나, 샘 스미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음반을 레코딩한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가 있고, 중심부에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가 상시 공연되는 뮤지컬 극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거리 곳곳에 수준급의 버스킹 무대와 공연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쇼디치(Shoreditch),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도 눈에 들어온다. 런던은 도시 전체가 음악적이다.

▶ 코벤트 가든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매년 런던을 찾았고, 그곳에서 많은 문화적 자극점과 배움을 얻었다. 사실 글로벌 음반사에서 일도 해보고, 음악과 여행을 소재로 한 글을 꾸준히 썼던 경험들의 원천은 대부분 ‘런던’의 문화적 감성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리, 바르셀로나, 런던 등 유럽의 클럽과 라운지에서 DJ로서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런던에서 음악적으로 보고 배운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문화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춘 파리의 욕심쟁이 같은 면모보다,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전달할 줄 아는, 그래서 꼭 필요한 것만 취하게 되는 런던의 분위기에 나는 매번 넋을 잃는다. 지인들에게 런던이 나의 ‘제2의 고향’이자, ‘영감의 인큐베이션’이라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낯설었던 런던의 열대야


한여름(7월, 8월)을 런던에서 지내본 사람들은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씨를 경험한다. 우중충하고 우울한 기운의 연속이지만, 이게 런던의 맛과 멋이다. 런던 여름밤은 예상외로 무덥지 않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은 잦은 편이고, 기온은 한국의 5-6월과 비슷해 보통 런던에서 여름을 보낼 때면 열대야를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못했었다.  

▶ 런던 빅벤


하지만, 5년 전 출장을 핑계 삼아 여름 휴가와 연결시켜 몇 일간 머문 런던은 매우 덥고, 습했다. 지금같이 코로나 19로 인해 자유롭게 어디를 떠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그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당시 내가 지내던 런던 골목의 펍(Pub)들은 사람들로 가득 차 밤새 이야기와 노랫소리로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열대야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나는 당장이라고 골목으로 뛰쳐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그 밤을 더 뜨겁게 불태우고 싶었지만, 선뜻 맘이 내키지는 않았다. 익숙하고도 낯선 그곳에서 마음을 움켜잡고 침대 앞의 노트북을 꺼내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냉장고에 있던 기네스 한 병에 소란스럽고 꿉꿉했던 여름밤을 나름대로 즐겼다.

▶ 런던 쇼디치 에이스 호텔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런던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아니다. 하지만, 그저 덥고 소란스러워 몸과 마음이 갈피를 못 잡던 시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로 낭만적인 여름밤을 기록으로 남겼던 유일한 밤이었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룰 요즘. 그때를 생각하며, 당시 행복하게 귀와 마음을 정화시켜준 음악들을 몇 곡 소개해본다. 길어진 코로나 19로 지친 독자분들께 마음의 위로와 휴식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면서.



플레이리스트(Playlist) - 열대야의 끝을 잡고


 

Coldplay – Square One


런던 출신 밴드 ‘콜드플레이’는 현재 팝 씬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밴드이다. 2000년 앨범 [Parachutes] 발매 이후, 이들의 인기는 현재까지 끓는점을 유지하고 있다. 콜드플레이는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냈는데, 앨범마다 히트곡들이 많지만, 특히 앨범의 1번 트랙이 좋은 게 참 많다. ‘제 자리’ 라는 뜻의 ‘Square One’은 콜드플레이 3집 [X&Y]에 실린 1번 트랙으로 잔잔한 듯하면서도 달음질치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Queen -Under Pressure


퀸(Queen)과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함께한 명곡이다. 퀸의 10번째 앨범 [Hot Space]에 수록되어있으며, 이 곡은 본래 극복 의지와 주변부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길어진 코로나 19와 열대야로 지친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파워풀한 음악이다.

 

 

Clean Bandit – Rather Be


클래식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영국 스타일로 발현되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질문에 바로 이거다!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밴드. 선율과 리듬, 멜로디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듣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게 할 곡 ‘Rather Be’는 푹푹 찌는 여름밤, 과하지 않은 흥으로 청자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The 1975 – Sincerity is Scary

발걸음을 춤추게 하는 영국 출신 록 밴드 The 1975. 밴드의 프론트맨 매튜의 매력이 큰 몫을 하지만, 작곡이나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최고의 매력을 자랑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의 세 번째 앨범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 에 수록된 곡 Sincerity is Scary는 잔잔한 삶의 행진곡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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