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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l 28. 2021

할아버지

1928년 2월 생

94세 나의 할아버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밥 한끼 겨우 먹을 정도의 살림으로 어린 시절 공부라도 해보겠다고,

파주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나오고

서울살이 해보겠다고

치위생사며, 똥치우는거며, 전전긍긍하다

홀로 검정고시 임용고시 보시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선생님으로만 48년을 사셨다.


책 살 돈 없어 사전 하나로 국어 영어 중국어

독한 마음 하나로 배워가며,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교육법을 고사한 융통성 없던 할배


전쟁 겪고, 아내와 자식은 폭격맞아 여의고

다시 결혼해

지금 나의 할머니와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 두 딸을 낳았고,

그 아들 딸들은 손자를 낳았다.

 

크면서 아들 딸 손자에게 대접 한 번 못 받으면서도

자식들에게 퍼주고,

미국에서 공부하던 사촌동생들

학비며 생활비며 어떻게해서든 마련해야한다고

모아둔 돈 다 털어 지원해주셨던

아낌없던 할배


자신은 택시비도 아까워 걸어다니고

밥값도 아까워 김치찌개 한 그릇도 겨우 드시던

나의 꼬장 꼬장한 할아버지가

신장암 4기란다.


계속 여의고 요즘 소변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나이가 많이 드셔서 수술도 쉽지 않단다. 코로나 19 때문에 병원에 혈액도 충분치 않고 또 수혈도 어려운 연세시고.


검사만 드립다 해대는데, 부정할 수 없는 심각한 암이란다. 폐로 전이까지..


일평생 자신을 태우며 살았는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셨는데

이제 희미한 기억과 짜증으로

자신의 병도 알지 못하고 엄마랑

병실 침대에 누워계시네.


어느 가족이든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올해는 참 일이 많구나.


2021년 유난히 길다.

끝나지 않는 고통이 무엇인지 올해가 그렇구나.


내 삶도 희미해져가는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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