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를 곁들인 털이야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꺼내기 어렵다 느낀다면 나는 분명 아직도 움츠려있는 것일 거다.
나는 다모증까진 아니지만, 여성의 성별을 가진 거치곤 털이 많은 편이다. 특히 보이는 부분에. 특히 팔이랑 다리에 많은 편인데 보통 털이 없는 편인 남성의 숱 정도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털은 어릴 때부터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름이면 나는 나의 팔과 다리를 숨기기 바빴다. 남자 애들은 내 팔을 보면서 큰 소리를 내면서 "와 너 왜 이리 털 많아?, 와 아저씨인 줄."라든지 "와 남자보다 더 많아."등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나는 그 놀란 표정과 억양들 하나하나가 상처였다. 더러운 동물이 된 기분이라서. 다른 친구들의 팔은 제모하지 않아도 매끈했는데, 내 팔만 북실북실했다. 어릴 때라 엄마에게 털을 밀고 싶다고 빌었지만, 엄마는 제모를 하면 털이 더 두꺼워진다며 결사코 반대해서 나는 그냥 털보인 채로 여름에 추위를 타는 연기를 시작했다.
여름에 비라도 내리면 쌀쌀해서 겉옷이라도 걸쳐서 털을 가릴 수라도 있었는데, 날이 더울 때는 나의 눈물 나는 불꽃연기도 어딘가 합리성이 많이 떨어졌다. 날도 더운데, 나는 계속 춥다며 바람막이 등을 챙겼는데, 엄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어디 아프냐 했지만, 그 엄마 앞에서 털 때문에 죽어도 맨 팔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 싫었다. 털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는 말을 그렇게 하기 싫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렇게 팔을 꽁꽁 숨기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지금 내 팔은 매끈하냐고? 아니다. 나의 팔과 다리는 한 번도 제모하지 않은 자연의 상태이다. 한번 금지된 제모금지령이 해지되지 않은 마냥 나의 팔과 다리는 여전히 털이 많다. 이상한 뚝심으로 버텼다. 털이 많은 나의 상태를 없애기보다 그냥 내가 받아들이고, 남들이 뭐라 해도 우습게 넘길 수 있길 바랐다. 머리에는 털이 안 난다고 탈모샴푸를 쓰고 병원이 생기는 마당에, 부위만 다른 팔과 다리에 털이 많다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 사람들은 털이 나는 '부위'에 집착할까 생각도 들었다. 그저 다 체모인데. 자신의 체모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남에게 신체를 보이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남자, 여자 상관없이 열심히도 몸의 털이란 털은 박박 밀지만, 나는 내 몸을 전시할 게 아니었다.
내 팔과 다리의 털을 자연스럽게 봐주고 소위 꼽주지 않은 사람과 만나겠다 결심했다. 물론 나도 가끔은 겨드랑이털을 기르고 다니는 건 좀 어려워서 겨드랑이만 제모를 허락했지만, 언젠가 내가 겨드랑이 털마저 괜찮다며 쓰다듬는 날이 올까. 지금 사회적 미의 기준에서는 다소 웃긴 상상이다. 그저 내가 털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내가 내 털이 싫어서, 우울한 감정으로 제모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털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예쁠 수도, 털이 잘 자라서 그것이 그 사람의 매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