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 예찬
이사를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동네 길은 슬슬 눈에 익기 시작했지만, 주변에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고 주어진 표지판에만 의존해서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이 순간 그저 나에게 음악재생기기였다. 쭉 걷다 보니 다양한 기관, 건물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걸 알았다. 육아를 지원해 주는 센터도 있었고 걷다 보니 마치 펜션으로 사용할 거 같은 주택 등 다양한 건축물들도 보았다. 점점 동굴로 가는 길과 가까워지는데, 인적이 줄어들었다. 오르막을 올랐다. 나무판자로 잘 대어놓아서 걷기 좋았다. 경사도는 표지판에 의하면 15도 정도로 쭉 올라도 그렇게 숨이 차지 않았다. 옛날 어렸을 때 아빠 회사에서 제공하는 산에 있는 콘도로 향하는 길과 유사하다 느꼈다. 휴양지의 일부분 같기도 했다. 불과 우리 집에서 1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이런 산책로가 있다니! 나는 작은 기쁨이 내 안에 등장한 것을 느꼈다.
걷다 보니 동굴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었다. 아직 동굴까지는 더 걸어야 했다. 산으로 진입해서 쭉 가야 동굴로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꽤나 올라왔는지, 땅을 뚫고 내린 뿌리와 같이 고드름도 같이 뿌리처럼 쭉 뻗은 채 얼어있었다. 떨어진 고드름을 들고 만지작 거리다 더 오를 것인지 내려올 것인지 고민을 했다. 2분 뒤면 일몰이길래 초행길임을 고려해서 다시 돌아온 길로 내려왔다. 사람이 워낙 없는 길이라 여기서 내가 갑자기 개죽음을 당하거나, 택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이 고요했지만, 이런 넓고 고요한 공간을 원한다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동네길을 걷다 보면 나는 동굴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동굴뿐만 아니라 우리 집 주변엔 박물관도 있고(3월에 다시 열어서 그때 다시 방문예정이다.) , 불친절한 아저씨가 2000원에 두 개를 주는 팥잉어빵을 파는 곳도 있고, 옻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동네길을 다닐 때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핸드폰으로 절대 지도를 보지 마라 말하고 싶다. 내 손안에 지도가 있다는 착각은 탐험정신과 재미를 죽인다. 가보지 않았던 길로 가보아서 그곳에서 새로운 사물들을 맞닥뜨리는 모험과 동시에 원한다면 편한 집으로 얼른 돌아갈 수 있는 안정성을 보장하는 경험은 동네길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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