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 기억의 한 조각
나의 도시락 싸기 역사의 시작은 프랑스 교환학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처럼 자주 배달을 해 먹을 수 없었고, 매번 외식을 하기엔 너무 비싸서 직접 장을 봐야 했고, 학교의 급식이 맛없어서 간단하게 내가 싸서 다니기 시작한 것이 나를 위한 도시락의 시작이었다. 학생회관 같은 건물에 들어가서 먹던 랩이 생각난다. 토르티야에 채소들과 로스트치킨 그리고 치즈를 넣었던 기억이 난다. 야무지게 둘둘 말아 한입 베어 물면 엔간한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이길만한 감칠맛이 난다. (치즈국 만세!) 사실 먹는 모양새는 어딘가 고단 보였을 것이다. 한 동양인 여자가 매일 구석에서 열심히도 랩을 까먹고 있다. 가끔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그래도 맛은 전혀 불쌍하지 않았기에 나름 만족하면서 도시락을 열심히 쌌다. 다양한 치즈와 소스, 신선한 재료들을 다양하게 넣던 재미 그리고 매일 다양한 마켓을 돌면서 다양한 재료를 직접 구경하고 사는 재미가 어찌나 재밌던지. 나는 그때 주부 9단도 울고 갈 만하게 모든 영양성분표는 다 읽어보며 다녔던 거 같다. 그 덕분에 나의 프랑스어 어휘장은 식재료 관련 단어가 그나마 풍성하다. 토르티야뿐만 아니라 그 이후엔 주먹밥, 김밥, 그린커리 등등 나의 메뉴는 점점 다양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훌륭한 솜씨도 아니었으나, 그때 처음 도시락을 싸면서 내가 이렇게 음식에 부지런한 사람인 줄 몰랐다.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은 다들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제법 자신들이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자신과 혹은 타인을 잘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조금 번거로운 시간을 써야 하는 거 빼고는 도시락 싸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하다. 건강면에서도, 이후에 음식을 뭐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아끼는 측면에서도, 자기 효능감 측면에서도 부족한 게 없다. 단지 막 만든 음식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거는 당연하니 단점으론 제외하자.
나의 교환학생은 어쩌면 자취 요리 유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의 스튜디오의 작은 냉장고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외롭고, 친구도 없고, 혼자 외국인인 상태로 수업을 꾸역꾸역 따라가며 우울했던 그 시절에 그나마 나를 살린 7할 이상은 내가 만든 음식으로 찬 일상이었다. 사실 혼자 도시락을 까먹는 그 순간은 좀 슬펐지만, 내가 만든 걸 먹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좀 살만 했다. 도시락은 늘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의 이미지에서 어른이 된 지금은 고독을 버티게 해주는 동반자의 의미가 되었다 하면 너무 과장일까. 프랑스 생활에서는 무엇보다 든든하고 빠르게 나를 채워주는 그런 순간은 도시락이 가능케 했기에 과장이 아니라 진실이자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