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MEE Nov 15. 2021

가을, 도서관이 좋은 이유

동네 에피소드

동네 공원에는 <북쉼터>라는 도서관이 있다. 올해 4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8살 아이가 학교 가는 오전이나 학원가는 오후에 공원 산책을 하고 북쉼터에 들러 책 읽는 것이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그것도 자칫 집에서 조금만 여유를 부리면 사라져 버리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매사 행동이 느긋한 나로서는 조금 부지런을 떨어야 허락된다. 


아침저녁 제법 쌀쌀한 가을에 접어들며 아침을 보내는 내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침에는 볕 드는 따뜻한 거실에서 유튜브 요가를 켜놓고 운동을 한다. 기분 좋은 시장기가 느껴질 때 늦은 아침을 먹는다. 뉴스거리를 챙겨보다가 집안을 스캔해본다.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으면 그날 청소는 가볍게 건너뛰기로 한다. 책을 한 권 골라 식탁에 올려놓는다. 책으로 손이 갈까 하다가 스마트폰이 먼저다. 업데이트된 SNS소식과 구독한 유튜브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된 게 있는지 훑다가 보면 하교시간이 머지않았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읽던 책을 다시 펼친다. 곧 아이 하교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공기가 데워진 오후엔 공원 산책을 즐긴다. 볕 드는 벤치에 앉아 바람에 휘휘 소용돌이치는 낙엽을 멍하니 보다 파란 하늘과 곱게 물든 나뭇잎에 다시 시선을 뺏긴다. 이 짧은 계절에만 허락된 자연의 색을 한껏 눈에 담아 넣는다. ‘아! 나 도서관에 왔지’ 빼앗긴 시선을 다시 책으로 돌려야 한다.



이곳이 일반 도서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여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긴 지 별로 안되기도 했지만 서가에 꽂힌 책이 단정한 상태로 있어 읽을 맛이 난다. 내부는 유니버설디자인으로 설계되어 누구나 독립적으로 이동 가능하고 책 읽는 공간도 꽤나 프라이빗하다. 가로로 긴 창문은 놀이터와 숲을 내다볼 수 있어 독서하다 잠시 멍 때리고 바라보기도 좋다. 이런 여유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공원 뷰 도서관은 흔하지 않기에 어느새 동네 명소로 자리 잡았다.


 여느 날처럼 오후에 북쉼터로 산책을 나와 책을 읽고 있던 중 할머니와 어린 손주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옹알거리는 소리와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려서 궁금증에 슬쩍 보게 되었다. 6개월 즈음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다정하게 책을 읽어주다가 이내 집중력이 흐트러진 아이와 놀아주다 또 울면 안아주는 모습이 보기에 평화로웠다. 


영유아기의 아이와 할머니가 도서관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보기에 좋았지만 도서관을 떠날 때 보였던 할머니의 양육태도가 인상 깊이 남았다. 도서관 마루에서 놀다가 유모차에 타는 게 싫었던지, 칭얼거리다 이내 울자, 할머니는 “그래~ 조금 이따가 또 안아줄게.”라고 말했다. 울음이 터진 아이가 한 마디에 그칠 리 없었다. 두 번째 “응~ 집에 가면 안아줄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다정하고 조용하고 편안했다. 역시 계속 우는 아이에게 변함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래 그래~ 조금 이따 집에 가서 또 안아줄게.”라고 말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일관성과 신뢰감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이따금 무너지고 자책하고 또 다짐하기를 반복한다. 일관성 있고 따뜻하면서 차분한 부모의 양육태도는 마치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같아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도서관에 온 할머니께서 이리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계시니 절로 우러르는 마음이 일었다. 그날 이후 우리 동네 도서관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책과 사람을 통해 성찰과 배움의 기회를 얻는 곳, 도서관에 자주 와서 읽고 관찰하고 또 배워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상대방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사회를 꿈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