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즘 Sep 17. 2019

공사 소음, 잠 못 이루는 밤

인근 주민의 삶도 생각해주세요

신혼집을 오피스텔로 정했다. 편의시설이 많은 역세권에 주변 매물 대비 괜찮은 가격이라 큰 고민 없이 계약했다. 오피스텔 바로 앞 신축 오피스텔 건설현장이 있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고 우린 지금까지 공사장 소음에 고통받고 있다.


5:50 AM 기상.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간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일 새벽 5시 50분 공사장 소음과 함께 우리의 하루도 시작된다. 눈 뜨자마자 화장실로 출동하는 부지런한 남편과 달리, 나는 매일 아침 베개로 양쪽 귀를 막고 한 시간이라도 더 자려고 몸부림친다. 그래도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모닝 소음을 버티고 있다.


이 집에 1년쯤 살다 보니 공사장 소음에 익숙해졌다. 공사를 하지 않으면, “어? 오늘은 어쩐 일로 공사를 안 하지..?” 하며 창문을 내다본다. 남편과 아침부터 대화할 소재가 생긴 것이다. 공사장 소음이 이젠 백색소음처럼 느껴진다...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니 오피스텔 공사도 거의 막바지다. 공사장 소음은 너무 불편하지만 건물이 한층 한층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볼 때면 인생의 시계도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잠시 슬픔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새벽 01:30 AM. 새벽에도 공사는 계속된다.

오피스텔이 거의 다 올라왔다. 아직도 내부는 공사 중이지만, 은행에서 나와 대출상담 부스를 만들고 입주일은 10월 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도 하고 있다. 우린 공사가 막바지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하루빨리 완공되어 입주 시기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늘 저녁 8-9시 사이에 멈추던 공사가 그 날 따라 10 시가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조금 짜증 났지만 밤늦게 까지 일하시는 현장직 분들을 보며 “이 시간까지 일하시는 분들 참 힘들겠다” 남편과 걱정스러운 대화도 나눴다. 이때까진 괜찮았다.


12:00 AM. 오늘은 자정이 넘어가도록 공사 중이다. 밖을 보니 약 10명의 작업자분들이 드릴로 콘크리트를 부시고 땅을 파고 계셨다. 우리는 각자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드릴 소음이 이어폰을 뚫고 온몸으로 느껴졌다. 1년을 공사장 소음과 살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 버티자는 마음으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공사장 소음', '공사장 소음 규제', '공사장 소음 신고' 등 폭풍 검색을 했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공사를 하는 것이 규제에 어긋나는 것인지 찾아봤다. 시간대별로 공사장 소음 기준치가 다르게 적용되는데, 자정이 넘는 시각에 50 데시벨이 초과하는 경우 규제 기준을 초과하는 수치로 민원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 소음측정 앱을 설치해 소음을 측정해보니 100-300 데시벨을 왔다 갔다 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이라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큰 소음임에는 틀림없었다.  


새벽 02:00 AM. 지나치게 관대한 소음 단속에 놀라다.

참다못해 새벽 1시에 공사 현장을 찾아갔다. 현장 관리자에게 오늘따라 새벽까지 공사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입주일에 맞춰 공사를 완료해야 하는데 특정 공사의 허가를 늦게 받아 일정에 차질이 생겨 늦게 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는 낮에 작업하려고 해당 기관에 허가를 요청했지만 도로공사는 교통 통행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불허가 났다는 것이다.  저녁 9시부터 새벽 6까지 진행하도록 허가를 내줬다면서 허가 관련 서류를 보여주더라. 공사를 지금 중단하거나 이 시간 안에 못 끝내면 손해가 몇 천만원이 발생한다며 고통스러워도 오늘 새벽까지만 참아달라고 부탁하셨다. 아니,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 있는데 새벽 작업을 하도록 기관에서 허가를 내줬다고(?) 그것도 해당 기관에서 먼저 시간을 제안을 했다고(?) 이게 정말 말이야 방귀야. 상식적으로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그 서류를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참다 참다 새벽 1시 반경 신고 문자를 넣었다. 112에 문자신고를 하니까 공사장 소음은 담당 업무가 아니니 110번 민원센터로 신고하래서 110번 야간 민원센터에 전화했다. 그랬더니, 관련 기관이 아니라며 해당 지역 야간 출동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어떤 부서인지 정확한 부서명이 기억이 안 난다). 몇 번의 전화 돌림 끝에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상황 파악 후 연락을 주신다 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공사장 인근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업체 측에서도 공사를 지금 중단하면 손해가 막심하다며 이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도로공사라 관행적으로 야간에만 허락을 내준다는 것이다. 공사장 인근 주민들의 항의로 담당 기관에서는 여러 차례 낮에 공사를 진행하도록 관할 기간에 요청하고 있지만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이나 새벽 공사는 규제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관, 행정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우리가 너무 오버해 여러 사람을 고생시킨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공사장 소음이 불편해도 인근 주민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는 것 일까?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배려해야 하는 문제겠지

민원이 있을 시 공사를 중단 할 수 있는 규제가 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하다. 공사현장 관계자는 금전적 손해가 커서 어렵다고, 경찰관은 현장 관리자를 대변하며 공사 중단 시 손해가 커서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행정기관 담당자는 해당 시간에 공사 허가증을 발급해주는 기관에 수차례 얘기해도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탓하며 참으라 말했다. 모두가 대화의 끝에는 우리의 불편함을 이해한다며 공감적 이해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늦은시간 수고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통화가 끝난 후,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몇 분 고민했다.


공사는 출근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온 얼굴로 출근을 했다. 출근길 변호사인 친구와 새벽에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친구는 얼마 전 공사장 소음 민원을 넣은 주민이 몇 백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졌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우리도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생각하니 덜컥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음을 참지 못하고 민원을 넣은 우리가 잘 못 일까, 새벽에 공사를 진행한 업체가 잘 못 일까, 새벽에 공사 허가를 내준 관련 기관의 잘 못 일까.


단 하루면 끝난다던 새벽 공사는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진행중이다. 언제쯤 이 새벽 소음과 작별할 수 있을까. 어찌할 방법이 없기에 오늘도 열어둔 창문을 닫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든다. 저녁이나 새벽 공사는 인근 주민의 평온한 밤을 위해서라도 자제해주세요 (_ _)


  









 




매거진의 이전글 YOLO와 GOLO 사이의 줄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