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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즘 Aug 08. 2019

일상과 삶, 그 안에서 중심잡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석사 4학기 차, 큰 무리 없이 졸업심사를 통과했다. 그동안 작성한 논문 초안을 다듬고 보강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논문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박사과정 입시와 취업준비를 해야 했다.

취업은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가고 싶어 입시 준비 계획을 A-Z까지 세워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예상치 못한 개인 사정으로 유학에서 취업으로 눈을 돌렸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아래의 3가지 이유가 가장 컸다.  


1. 미국으로 갈 수 없는 사적인 이유가 생겼다.
2. 막연히 공부를 하기엔 미래가 불투명했다.
3. 신입으로 시작하기에도 이미 늦은 나이였다.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땐 이미 채용시즌이 지난 상태여서 넣을 수 있는 회사가 많이 없었다. 그보다 지원하고 싶은 회사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몇 년째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늘 비슷하게 조언했다. 가고 싶은 회사가 정해져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대기업은 기본으로 지원하고, 직군 맞는다 싶으면 무작정 지원하는 거라고. 그렇게 해도 서류통과도 힘들다고.


연구분야를 정하지 못해서 마음고생을 했었는데
취업해서도 방황하기 싫단 말이야...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무기력함, 우울함, 낮은 자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인생에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20대 후반에 지독한 제2의 인생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무기력함과 낮은 자존감의 원인은 “보잘것없던 논문 성과와 텅 빈 내 이력서”였던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에 늘 후회하지 않으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걸까. 하고 싶은게 있는 사람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퇴사를 하고 무작정 뛰어든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보면 "퇴사했습니다", "내가 퇴사한 이유",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법" , "열정에 기름붓기" 등 퇴사, 자기 계발 콘텐츠가 넘쳐난다. 높은 조회수와 공감 댓글을 읽을 때면,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2030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난 왜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없을까?


학교 상담센터에 찾아갔다. 내 의지로 찾아간 곳이 아니었다. 학교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경도의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그곳으로 보내진 것이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상담사에게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것을 받았다.


그녀는 나에게 심리테스트 결과 경도의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했다.  

상담사: “요즘 고민이 많으세요?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나: “고민은 늘 있죠... 최근 졸업도 하고 어렵지 않게 취업도 했어요. 근데 인생의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나름 열심히 달려왔다 생각했는데 속 빈 강정이 된 느낌이랄까.”
상담사: “그렇게 느끼게 된 원인은 뭐라 생각하세요?”
나: “취업을 준비하면서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막연히 교수가 되고 싶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제가 진짜 그것을 원했는지도. 제가 정말 그동안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꿈 많은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눈 떠보니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그냥 사람인 거예요. 너무 naive 하게 살아왔던 거죠.”
상담사: " 지금 OO 씨가 하는 고민조차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회가 정의한 성공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마세요. OO 씨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충분히 더 잘하고 있을 거예요."

 
30분 남짓 우린 그렇게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학부과정부터 쉬지 않고 공부한 학생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이라 했다. 박사과정을 바로 진학하기보다는 회사에 취업해 1-2년 사회경험을 쌓는 것을 추천하며 자연스레 괜찮아질 거라고 조언했다.




회사를 다니는 지금. 회사 안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하다. 행동 하나에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고, 매일 무기력함, 우울감, 낮은 자존감과 싸우고 있다. 내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부족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불안했고, 삶의 목표가 없어 방황했던 것이다.


무기력해도, 우울해도, 귀찮아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 일상이 모여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나는 제2의 사춘기를 겪고 내 삶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 경험한 것에 만족하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감사하려 한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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