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첫 주말은 비도 오고 울적하게 지나갔다. 월요일이 밝았을 때 마침 날씨도 맑았다. 쾌청한 하늘을 위에 두고 두오모 대성당 루프탑을 올랐다. 같이 지내는 친구와 함께였다. 노오란 햇볕이 내리 쬐는 시간, 오후 3시~4시 정도? 거기서 친구랑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했다.
일단 친구는 내가 감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공항에서 맞딱뜨렸을 때였다. 내가 “잘 지냈냐”라든가,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같은 반가운 인사를 건네지 않아 1차로 황당했다는 것이다. 그런 데에다 이틀 전 여행 계획 때 2차 폭발을 한 셈이었다. 뒤이어 내가 부엌이나 화장실도 깔끔하게 쓰지 않았고 열쇠까지 부러뜨려 문짝을 바꿀 뻔한 소동까지… 차곡차곡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자꾸만 주의를 주는 친구에게 화가 나 “야, 그래. 그런 거 내가 미리 물어봤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근데 일어났잖아. 왜 자꾸 지나간 얘기를 꺼내냐고” 하며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했어야지’ 식의 사고 방식이 나한테는 소용 없는 메아리 같았기에,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사과는 아니었다. 그냥 ‘그때 내가 그래서 그랬어’, ‘그랬구나 몰랐어’ 이 정도의 대화였다. 짧지만 정다운 분위기였다. 그래도 화해는 어려운 것 같다. 내 생각에 화해를 하려면 더 솔직하고 깊은 마음을 꺼내야 했지만, 그런 마음을 꺼내기에는 아직 서로의 마음 상태가 그리고 회복되진 않은 것 같았다. 싸운 날의 친구의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 들은 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나도 참 무심했고 배려가 부족했다. 게다가 이번 다툼에는 미처 배려하지 못한 내 행동들도 분명 널려있었다. 우리는 너무 다른 성향의 어른으로 자란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이후 오랜만의 공동생활을 하게 됐고, 여긴 친구만의 규칙이 있는 집이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 지낸 적이 없었으며, 고딩 때는 말하지 않아도 통했을지 몰라도 성인이 된 우리는 시시콜콜 많은 걸 공유하지 않은 시간이 벽처럼 쌓여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조금 더 존중받는 데에 익숙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때처럼 너무 편하게만 대하면 서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착각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우리의 다툼은 막을 내렸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공동생활도 조금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밀라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두오모 위에서의 시간이 꽤나 알찼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리프트를 타지 못하고 걸어 올라왔을 뻔한 곳. 이 낯선 도시에서 친구의 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었다.
내일부터는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으로 친구와 여행을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