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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Aug 07. 2019

무무무마니

치킨의 친구는 치킨무!

  어느 봄날이었던 것 같다.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강남에 있는 라마다 서울 호텔 옆 건물. 나와 내 친구는 늦게까지 공연을 보고 들뜬 마음을 이어나가려 치킨집을 찾았다. 낮에 미리 봐 둔 곳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매우 배가 고팠다. 메뉴는 항상 그렇듯 반반무마니. 뿌링클이든 간장이든 새로운 메뉴들이 많이 있어도 언제나 기본이 좋다.


 잠시 뒤 사랑하는 기름 냄새가 콧속까지 훅 들어왔다. 잘 튀겨진 치킨과 치킨무, 양배추 샐러드, 맥주 2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피곤하고 배가 고팠지만 우리는 인증샷까지 찍은 뒤에야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전투적으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양념을 좋아하는 나는 항상 양념 닭 다리를 제일 먼저 집는다. 친구는 프라이드 날개를 제일 먼저 먹는다. 친구는 퍽퍽살을 좋아하고 난 기름기 많은 껍질 부위를 좋아한다. 이 정도면 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부위를 먹으며 아까 본 공연에 대해 떠들며 치킨을 해체했다.


 어느 순간 입에서 느끼함을 호소했다. 이 순간 필요한 건 치킨무. 누가 발명했는지는 몰라도 참 유니크하고 한국적이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깍두기가 있어도 되었을 텐데, 아니면 달달한 양파 절임이 있어도 되었을 텐데, 반드시 치킨 옆에는 치킨무가 있다. 그날도 느끼한 입안을 헹구기 위해 치킨무를 입에 쏙 넣었고 내 혀가 뇌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거 진짜 치킨무야? 일반적인 치킨무는 적당하게 새콤하고 아주 살짝 단맛이 있다. 김치로 예를 들자면 김치를 숙성시켜서 신김치가 되기 직전의 신맛. 그런데 이건 김치 수준이 아니었다. 묵은지였다. 한 3년 만에 장독대에서 꺼낸 치킨무가 틀림없다. 나는 홀린 듯이 치킨무를 하나 더 집어먹었다. 혀가 요동을 치며 다시 뇌에 말을 한다. 새로워, 짜릿해, 자극적인 게 최고야.


 “너 왜 무만 먹어?”


 난 친구가 물어볼 때까지 치킨 한입, 무 다섯 입, 치킨 한입, 무 세입, 치킨 한입, 무 여섯 입을 반복했다. 어느새 치킨무는 바닥을 보였고 주인에게 리필을 요청했다.


 “무 존맛탱”


 친구는 날 따라서 치킨무를 입에 넣었고 아삭아삭 몇 번의 소리 후 감상을 말했다.


 “그냥 엄청 신데?”

 “그래서 맛있나 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 열심히 치킨과 치킨무를 먹었다.


 “무만 먹지 말고 치킨 좀 먹어!”

 “먹고 있어. 무를 겁나 많이 먹을 뿐이야.”


 나는 무를 한 번 더 리필했다. 무 세 접시를 혼자 먹고 있다. 내 행태가 어이없는지 친구는 치킨을 먹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 좀 그만 먹어. 네가 소냐!”

 “등치는 소지!”


 우리는 한참을 같이 흐느꼈다. 이건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다. 또 친구 사이에서 한 명이 웃으면 다른 한 명이 같이 따라 웃는 건 필연이다. 결국, 그날 나는 내 몫의 치킨을 먹지 못했다. 마지막 무 리필을 했을 때 치킨집 주인은 국그릇 가득 무를 가져다주었다. 그 전에 무가 아주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먹고 죽어보라는 것 같았다. 치킨 남은 건 포장해서 호텔 냉장고에 넣어두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친구와 침대에 누웠다.


 “너 오늘 피곤했던 거 같아”

 “갑자기 왜?”

 “아니 무 많이 먹는 것 보니까. 원래 피곤하면 신맛 나는 과일을 많이 먹으라 하잖아. 오렌지나 레몬 같은 거. 뇌가 본능적으로 널 조종한 거야”


 갑자기 친구가 음모론을 퍼트린다. 하긴 그날 나는 아침에 회사에 갔다가 반차를 내고 콘서트를 보러 갔다. 굿즈를 사겠다고 낮에 줄을 서고 그 큰 잠실야구장 근처를 걸어 다녔다. 화장실 줄은 어찌나 긴지 갈 때마다 줄을 또 섰다. 점심도 저녁도 안 먹고 초콜릿으로 연명하다가 콘서트까지 보고 치킨을 먹었다. 그럴 만도 하네.


 배가 부르면 잠을 잘 못 자는데 그날은 피곤해서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난 호텔 변기를 막았다. 너무 센 식초 탓이었을까. 아니면 미끌미끌한 무(?) 변기가 막혔다고 어떡하냐고 절규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조용히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변기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친구야, 너와 나 사이 참된 사이 아름다운 사이! 그리고 이후부터 난 무엇에 홀린 듯이 치킨을 먹으러 가면 치킨무를 그렇게 먹는다. 그러면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친구가 또 나를 타박한다. 제발 치킨 좀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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