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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Apr 08. 2024

프리랜서를 마치고

오래 쉬고 들어간 회사에서도 3개월 만에 퇴사하면서 당장의 여유가 없었음에도, 곧장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에는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내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꼭 직장에 다닐 필요는 없을 거라는 기대나 언제든 마음의 준비만 되면 다른 일을 찾아 떠날 거라는 핑계도 이 일을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그때는 내 결정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정말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일종의 도피성 선택은 아니었을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들도 사실은 그저 방어기제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꽤 자주 하곤 했다.


나이 서른에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일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타이핑을 쳤지만, 받는 돈은 한 달 용돈 겨우 충당할 정도밖에 되지 않다. 그나마 1년이 다 되어가서야 최저시급 정도 받을 수 있었는데, 중에서도 벌이가 거의 없다피 한 달도 있다 보니 모아 온 돈을 야금야금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때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든 그만 두면 된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더 해보고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가서 판단해도 늦진 않겠다 싶었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는 받는 돈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N잡으로 병행할 일들을 찾아야 했고 그만큼 시간을 갈아 넣어서 일해야 했다. 바쁠 때는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떠서 다음날 새벽 2시를 넘겨서 일을 하는데도, 피곤하다는 생각보다 이번달은 그래도 여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엄마는 아들이 새벽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힘들지 않냐고 종종 물었지만, 나는 그런 걱정마저도 이제 그만 나가라는 압박으로 들려서 답답해졌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내, 외롭고 불안한 마음이 고양이 털처럼 자꾸만 들러붙어서 잘 떼어지지 않았다. 혼자서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을 오래 했고,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한참이나 벗어나버린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고민을 쉽게 터놓을 수가 없었다. 직장 생활도 하지 않고 집에서 편히 일하면서 징징대는 모습으로 보일까 봐. 내 고민이 직장 다니는 사람에게너무나 가볍게 느껴질까 봐. 남들이 말로는 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그 사람의 진심과 별개로 자꾸만 의심하면서 미워할까 봐. 괜찮다고 말해야 했고, 남들에게 정말 괜찮아야 보여야, 나도 어느 정도 괜찮게 지낼 수 있었다.



점심은 먹고 일해야 할 것 같아서 밥을 조금 퍼놓고,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해먹을 생각에 프라이팬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프라이팬을 꺼내 든 순간 선반의 문이 닫히면서 뭔가 탄력 있는 물체가 '퉁'하고 떨어지면서, 다리에 무언가 액체가 튀는 느낌이 들었다.

멸치액젓이었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향에 잠시 넋을 놓은 새, 멸치액젓은 반이나 쏟아져서 바닥에 흥건했다. 쓰러진 병을 치우고 걸레를 찾아봤지만, 잘 보이지 않아서 키친타월 몇 장을 뽑아서 덮었다. 강아지가 달려와서 바닥을 핥을까 봐 마음이 급했다. 키친타월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멸치액젓을 잔뜩 머금고 축축해졌다. 나는 젖은 키친타월을 비닐에 담아서 한쪽으로 치워놓고 물티슈로 바닥을 닦았는데, 멸치액젓이 그렇게도 역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 자체도 불쾌했지만, 그것보다는 비린내에 뒤이어서 은근하게 올라오는 단내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당연히 식욕은 절로 떨어져서 퍼놓은 밥을 밥통에 도로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밥은 먹었냐는 여자친구의 문자를 받았는데, 별것도 아닌 일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벌써 먹었다고 답장을 보냈다. 궁상맞다고 생각했다. 계란프라이 하나 먹겠다고 멸치액젓과 씨름한 것도, 집에서 이러고 있는 모습이 괜히 못나 보일 거 같아서 숨기는 것도 지지리 궁상이었다. 이 생활이 너무나 외롭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나는 별것도 아닌 일도 자꾸만 마음대로 안 되고 어긋나는 걸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자꾸만 눈물까지 나는 걸 보니 참 가관이다 싶었다. 그제야 나는 이 생활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받아들였다.



이러한 생활을 일 년 넘게 이어오다 보니, 다행히도 숨 돌릴 정도큼은 급여가 올다. 거기에 혹해서 다시 이 일에 붙들렸고,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고, 좀만 더 주면 정말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렇게 벗어나지도 정착하지도 못한 채로  개 더 보냈다. 결국 새로운 직장을 구을 때는 사실 이 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다만 이력서를 낸 곳에서 너무나 흔쾌히 연락을 주었고, 그저 오래 미뤄두었던 일을 이제는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물론 오랜만에 직장 생활을 하게 된 탓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렵긴 했는데,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적응 기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이전에 하던 일을 완전히 인계하지 못해서, 퇴근해서도 매일 새벽까지 일하다 보니 한 주가 순식간에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주를 넘기고 난 다음부터는 언제 걱정했냐는 듯 금방 적응했고, 이전에 하던 일도 일부를 부업으로 가져와서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들이 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그렇게 기대하던 엄마는 이틀 전 날에 발을 다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아침밥 챙겨줘야 하는데..." 병문안을 갔을 때 엄마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집에서 일할 때 서아침 거르기로 합의했으면서, 막상 출근한다니까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입원기간 내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했고, 오늘 일은 어땠냐거나 부업은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걱정이 고마우면서도, 집에서 일할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에 다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에서 일할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내가 아니라 엄마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라며 입원한 사람의 속을 긁었다. 그런 말에도 정말 기분이 좋았는지 엄마는 웃고 넘겼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때도 지금이랑 다르지 않았다는 거였고,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그동안 집에서도 열심히 해왔다는 격려와 인정이었다. 앞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이 아니라. 외로운 생활에서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건 엄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기에 내심 서운한 마음은 숨기지 못했던 것 같다.


프리랜서를 마치면서 오랜 직장에서 퇴사를 하는 것만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직원은 나 하나뿐인 공간이지만, 이별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을 준비하는 시간, 어느새 침대 위로 껑충 올라와서 자리를 잡는 강아지의 온기를 품고 있는 시간, 베이커리 학원에서 엄마가 손수 만든 빵을 기다리는 시간, 정말 일하기 싫은 날에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 늦은 저녁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시간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모두 감사하게만 느껴졌고, 그만큼 그런 순간들로부터 다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을 잘 보내왔기에, 다시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힘들고 외로웠던 만큼 감사하고 소중했던 기억들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큰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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