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교에서 보는 하늘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다리의 경사에서 본 구름은 마치 손에 닿을 듯 낮게 떠있었고, 그 뒤로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듯한 푸른 여백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다리의 건너편을 향해 달려가면서, 동화 속 구름이 가득한 마을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리에 우뚝 솟은 Y자형 탑과 거기에 연결된 수십 가닥의 케이블은 마치 그 마을의 입구 같았다. 차는 그 입구로 빨려들 듯이 속도를 내며 달렸다.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자 어느새 전망이 트이면서 수많은 빌딩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빌딩숲 위로는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놓은 듯한 구름이 가득했다. 살면서 내 인생에 필름 사진 열 장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순간 못 참고 셔터를 누르고 말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내 옆에 N이 있어서일 거다. 햇수로는 9년 가까이 함께 했는데도, 아직 결혼 준비가 안 된 나를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 그저 도로 위 풍경에도 아이처럼 좋아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거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오늘이 지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될지라도, 내 인생에서 지금 한 프레임만큼은 너무나 빛나서 잊히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 순간 내 삶을 더 빛나게 채워 넣고 싶었고, 내 하루를 더 사랑하고 싶었고, 그 모든 순간을 우리가 함께 하기를 바랐다. 이런 하루가 자주 반복되기를, 그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이 충만감을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때 우리는 범프오브치킨(BUMP OF CHICKEN)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N이 학창 시절부터 좋아한 일본 밴드인데, 17년 만에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N이 그 밴드를 좋아한 햇수와 얼추 비슷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누군가의 팬이라는 게 대단해 보였다. 세상 대부분의 일을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는 나와 달리, N은 무언가를 좋아하면 푹 빠져버리곤 했다. N은 좋아하는 영화는 두어 번씩 찾아서 보고, 좋아하는 만화는 외서를 번역해 가면서 읽고, 게임을 해도 모든 스토리를 찾아본다. 그에 반해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질 않고, 게임에서는 모든 스토리를 스킵하며, 매사에 시큰둥한 타입이다.
N은 범프오브치킨의 노래들이 가사도 참 좋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어를 못하는 나는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는데, 가사를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좋은 노래들이 많았다. N은 어떤 노래가 좋았는지를 물었고, 나는 그중에서도 Innocent라는 노래를 콕 집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뭔가 와닿았다고 해야 하나.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N은 어떻게 들었을지가 궁금했다. 평소 같았으면 Innocent가 어떤 곡인지 설명했을 N이 별말을 안 해서 더 알고 싶었다.
「イノセント(Innocent)」의 원뜻인 순진함과는 달리 가사는 질투와 시기심에 가득한 내용이었다. 나 같은 노래를 골랐구나. '인생은 너무나 뻔하며, 변하는 게 없고, 잘 되는 일보다 안 되는 게 많다.' 그런 생각을 달고 사는 나처럼, 그런데도 사실은 누구보다 잘 살고 싶은 나처럼 찌질하면서도 투명한 노래였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도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 태어난 노래는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음악은 순수한 것’이라는 의미가 좋았다. 이런 나라도,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거. 그 진심을 어떠한 곡해나 의심 없이 들어줄 네가 있다는 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랑하는 일은 글쓰기뿐이라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방법도 글쓰기밖에는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오랫동안 좋아하는 N에게 내 진심이 분명하게 전해지기를. 이 날의 기억이 우리에게 오래 남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