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썼다. 출판편집자를 포기했던 일을, 불만이 가득했던 첫 회사의 기억을, 결국 이직한 곳에서도 금방 퇴사했던 이야기를,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자주 우울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적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스스로 못나고 부족한 부분을 까발리고 나면 얼마간은 후련했기에. 내가 읽어도 불편할 글을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글들을 자꾸만 읽어달라 졸랐다. 나를 상처 입히고 주변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글을 치유하는 글쓰기로 착각했으니까. 솔직해야 한다는 말을 방패 삼아서 그런 글들을 써왔다.어쩌면 나는 그냥 내가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했나 보다.
글을 쓰는 '나'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치유하는 상담사가 아니라,가장 비겁한 부분을 은폐하는 공모자였다. 나의 치부와 아픔과 외로움으로부터 회복하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그것들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었으니까.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는 나를 너무 미워했고 사랑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지금껏 글을 쓰지 않았던 건 돈이 되지 않아서라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서 힘든 일을 피했던 건 원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외롭다면서 사람 만나기를 피했던 건 상처받기 싫어서라고. 지금까지의 모든 선택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둘러댔지만, 그동안 썼던장문의 핑계 중에서도 합당한 이유는 단연코 없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는 치유하는 글쓰기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응급조치면 몰라도. 그동안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결핍과 몇 번이고 마주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들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나아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없는 글은, 그저 흠집 가리기에 급급한 글은 상처만 덧나게 할 뿐이라는 걸. 치유의 글쓰기가 가진 진정한 힘은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치유해 나갈 폭발력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글쓰기로 연결된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저마다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치유의 글쓰기를 시작하시는 작가님들에게 이 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