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 선생님들은 회의 중

학년 회의, 교과서 나르기

by 화원

연일 계속되는 짐 나르기가 무리였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잘 아는 옆 반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선생님, 우리 반 교실 히터 좀 미리 틀어주세요. 교실이 너무 추워요”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그렇게 해주셔서 따뜻한 교실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식사 후 학년 회의가 있었다. 먼저 부장님이 여러 가지를 전달하셨다. 내가 이 학교에 근무한 지 5년째인데, 4년 전 제안되었던 ‘학년 연구실 내 정수기 설치’가 드디어 다음 주에 된다는 소식이 가장 좋았다. 우리 학교에는 아이들을 위해 가로로 2m 정도 되는 대형 정수기가 층마다 2대씩 있다. 다만 이 정수기는 아이들이 없는 방학 때는 중단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온수 기능은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먹던 물통에 물을 받기도 하고~ 계속 지도해도 입을 대고 먹는 아이들~ 그 아래 가끔은 너저분한 머리카락…. 그런 정수기라도 아쉬워서 이용하긴 하지만, 정말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엔 모두 있는 정수기가 교사 6명 이상씩 있는 학년연구실에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 4년 만에 설치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4년 전 그 제안을 했던 선생님에게 카톡으로 연락했다. “**선생님, 4년 전에 선생님이 제안했던 연구실 정수기가 드디어 다음 주에 설치된대요.”“아 그래요? 그런데 저 있는 이 학교에는 정수기가 없어요….” 제안했던 그분은 안타깝게도 학교를 옮겨서 이 광경을 볼 수 없다.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이다. 평가에 대해, 생활지도에 대해, 학폭에 대해, 업무 분장에 대해, 인사 규정에 대해 선생님들이 많이 제안하지만 당사자들이 학교를 옮기면서 그 의견은 묻히고, 또 문제는 반복된다. 그래서 이의제기했던 문제에 대해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선생님은 떠나고, 학교에선 똑같은 제안이나 실수가 반복되기도 한다. 선생님들이 2~5년마다 전근하는 규정은 이유가 있겠으나, 조직만 보자면 참 안정성이 없다 보니 역사가 기록되지 못하고 전해지지 못한다.


오늘의 회의 주제는 보통 소풍이라고 부르던 ‘현장체험학습’을 올해 버스를 이용해서 갈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것이었다. 보통 같으면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번 가면 되겠지만 최근에는 논의가 뜨겁다. 이 논의의 시작은 2022년 11월 강원 속초시 한 테마파크에서 초등학교 현장 체험학습 도중 발생한 학생 사망사고에서 시작되었다. 2022년 11월 11일, 속초시 노학동의 한 테마파크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할 당시 6학년이던 한 여학생이 버스에서 하차한 뒤 신발끈을 고쳐 묶다가 움직이던 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당시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과 이동할 때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담임교사 A 씨와 함께 보조 인솔 교사 B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또 버스 운전기사 C 씨는 교통사고특례법위반 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바로 열흘 전인 2025년 2월 11일, 춘천지방법원은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고 인솔 담임교사에게 1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를 적용해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전세버스 기사 금고 2년, 인솔보조교사 무죄를 선고했다.

많은 사고가 그러하듯, 안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 일어났다. 학교 일정에 따라갔던 학생이 사망했으니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가장 믿는 학교에, 가장 믿는 교사를 따라간 아이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6학년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안다. 임신부터 몇 년을 기다려 온 아이, 임신이 어려워서 난임과에서 진료받으며 여러 노력 끝에 잉태된 아이,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서 자란 아이, 출산 과정이 어려웠던 아이, 태어나자마자 심장에 구멍이 있어서 수술해야 했던 아이, 누군가가 그 경력이나 연봉을 포기하면서 최소 2~3년을 키운 아이다.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조금만 나도 속상해하며 일으킨 아이, 해달라는 거 다 못 해줘서 아픈 손가락 같은 아이, 말 한마디 꺼내보려고 언어 치료나 놀이치료를 해가며 노력한 아이도 있다. 그리고 어렵게 휴직해서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서 울기도 하셨을 부모님, 겨우 직장에서 눈치 봐가며 연가나 조퇴를 내고 아이 입학식과 공개수업을 따라다녔을 그 부모님, 퇴근하고 늦게 오자마자 아이가 내민 통신문과 준비물을 챙기느라 눈이 충혈되곤 하셨을 부모님…. 나도 그렇게 두 아이를 키워왔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또 교사이기도 하여, 다른 쪽에서는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가 도덕 시간에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민은 대부분 선과 악에서 고르는 일이 아니고, 여러 가치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볼 때, 그 교사도 직무상 현장체험학습을 갔는데,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학생이 사망했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금고형은 당연퇴직이기에 해당 교사는 퇴직할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일어난 2년여 전부터 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이 학교 재량의 일이기에 학교별로 결정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민원을 받고 있지만 전세버스를 이용한 현장체험학습은 가지 않고, 가까운 공원으로 걸어가는 정도로 가고 있다. 이후 교육부장관도 여러 기관과 협의하며 법 개정 전까지 기존의 현장체험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협약들을 이끌어내고 있긴 하지만, 당장 지금 법적으로는 현장체험학습을 갔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을 지는 것은 교사 개인이기에 학교마다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 학부모들의 민원 요점은 “옆 학교는 가는데 왜 우리 학교는 안 가냐?”는 것이다. 교사들 주장의 요점은 “아이들의 단지 그 체험학습 경험을 위해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가 교사가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가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대다수가 전세버스를 이용한 현장체험학습은 반대하면서 회의를 마쳤다.


여기에 최근 2월 10일, 대전 지역에서 40대 여교사가 돌봄 교실을 마치고 나가던 8세 여아를 유인하여 교내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학교와 교사를 향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있다. 조사 결과 그 교사 개인의 '성격적 특성과 증폭된 분노'에 의한 범행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사 한 명을 통해 그 집단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요즘 교사들은 안 그래도 떨어지는 사기를 붙들며 겨우 교단을 지키고 있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더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선생님은 정년까지 10년이 남았음에도 “좋을 때 그만두고 싶어요.”라며 명예퇴직을 해버렸고, 내 친구도 1년만 더 하고는 명예퇴직 하길 기다리고 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은 정말 늪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이 더 깊어지고 있다. 머릿속은 이렇게 교사의 소명 의식, 책임과 역할, 미래 이런 것들로 복잡했지만, 그럼에도 오늘 할 일은 또 남아있었다.


바로 새로 온 교과서 나르기다. 교과서 업체가 친절하게 각반별로 교과서를 배부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학교 1층에, 그나마 우리 학교는 교실이 시작되는 2층 복도에 6개 학년 교과서를 모두~ 상자째로 늘어놓았다. 교과서를 당장 열흘 후 아이들이 오면 나눠줘야 하니, 일단 4학년 자료실로 옮기기로 했다. 4학년 아이들이 대략 180명이고, 도덕, 국어(가), 국어(나), 국어활동, 사회, 수학, 수학 익힘, 과학, 실험관찰, 음악, 체육, 미술, 영어 교과서가 이렇게 13권이다. 그런데 교과서 한 권, 한 권이 얼마나 두껍고 무거운지 모른다. 이제는 국가에서 일괄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업체별로 만들어서 검정교과서가 되면 학교가 그중 선택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를 번쩍번쩍하게 더 멋지게 만들려는 노력이 보인다. 교과서 표지는 두껍고, 교과서 내용 뒤쪽엔 스티커나 뜯어 쓰는 것들, 기타 사진 자료들… 로 정말 대단하지만 결국 무겁다는 게 문제다. 이젠 아이들이 책가방에 넣어 다니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무게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보통은 교과서를 교실 사물함에 넣고 다닌다. 숙제가 있는 책만 집에 가져가는 정도다. 그러니, 집에 가서 교과서로 복습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다. 오늘 동학년 8명의 선생님이 함께 무거운 교과서 상자를 하나씩 카트에 올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4층으로 올리기를 세 번, 그렇게 겨우 옮겨왔다. 다들 노련한 분들이라 손에는 장갑을 끼고, 가위로 플라스틱 노끈을 끊어가며, 겨우 내 교과서와 지도서를 1벌 챙겨 왔다. 이번에 4학년은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바뀌느라 변화가 많은데 이미 연수를 듣기도 했지만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나도 오늘 몸상태는 그저 그렇지만, 힘든 일에 빠질 수가 없다. 내가 빠지면 다른 분들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몸 쓰는 일을 한다. 내가 이제 학교에서 의지하는 건 동료 선생님들뿐이다.


그리고 교실에 와서 또 학생들 명렬표와 학부모 연락처를 인쇄하고, 교실 앞과 뒤에 이쁜 환영 인사 문구들을 조금 붙였다. 메신저로 온 부탁들을 또 순서대로 해낸다. AI 연수가 월요일에 하루 종일 있는데 사전에 1차시 온라인으로 수강 신청해서 들으라는 거였다. 연수원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해서, 40여 분의 온라인 연수를 들었다. AIDT라고 불리는 AI 교과서가 왜 필요한가, 어떤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교사가 제때, 정확한 피드백을 완벽히 주지 못할 바에는 기계적 프로그램으로 학습시키자는 거였다. 취지는 좋으나, 스크린 타임이 안 그래도 긴 아이들에게 AI 교과서가 왜 필요하냐는 주변 학부모들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학교에서 요구해서 AI 교과서가 시작되는 게 아니다. 나도 뉴스 보고서야 알았다. 어떤 교사분들의 의견 듣고 시작한 건지 모르겠다. 이 나라 교육은 항상 이용당한다. 경제와 정치에 이용당한다. 원하지 않는 걸 가르쳐야 하고, 원하지 않는 기계와 시스템으로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이 원래 국민들에게 가르치려는 걸 가르치는 거지만, 장사꾼들의 놀이터까지 된 것 같아서 아주 씁쓸하다. 교육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기기를 위한 교육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태블릿과 생활기록부를 다루는 전산시스템, 이제 AIDT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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