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하는 교실 이사에서 벗어나고 싶다~
원래는 오늘 결혼기념일이었다. 남들은 날씨 좋은 봄, 가을에 결혼하는데, 우리 부부는 교육에 전념하는 남편 덕? 에 모든~ 학사일정을 마친 후 2월 19일에 결혼했다. 그래서 매년 학교에 출근해야 하는 바쁜 2월 결혼기념일은 조촐하기 짝이 없다. 먼 곳에 갈 수도 없고, 풍경 좋은 낮 외출도 어렵고, 그저 피곤한 채 집에 와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25년 차에야 비로소 “계속 결혼기념일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남편도 조용히 동의하여 올해부터는 한 달 당겨서 1월 19일에 기념하기로 했다. 그래봐야 뭐 동네 새로 생긴 식당에 가서 보리밥에 주꾸미가 나오는 저녁을 먹고 옆에 있는 아트박스에 가서 조금 비싸 보이는 3색 볼펜을 커플템으로 산 것뿐이었지만 2월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늘은 보통 ‘교육과정 워크숍’이라 불리는, 개학 준비 1주일 중 첫날이었다. 추운 날 9시에 시작하는 회의 시간 맞추는 것부터 어려웠다. 아침 6:30 알람을 두어 번 스누즈로 늦추다가 겨우 일어나서 급한 대로 누룽지를 끓이고, 씻고, 이미 끓은 누룽지를 뜨겁지 않게 한 그릇 떠 놓고, 화장하고 나서 적당히 식은 걸 먹었다. 양치하고, 유난히 추운 오늘 날씨라 두껍게 옷을 입고, 자는 애들한테 엄마 출근한다고 인사하고 출근했다. 아이 둘 모두 다 커서 식사 걱정은 따로 안 하지만, 이 모든 출근 과정에는 쉼표가 없다. 바로바로 이어져야 하고, 아무 변수가 없어야 한다. 지난주만 해도 봄날 같던 날씨가 수능 한파도 아니고, 출근 첫날인 오늘 왜 갑자기 –7℃ 냐구…. 나의 출근일 5일 간만 골라서 영하권이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의 환영 말씀을 듣고, 복직이나 전입교사들의 인사를 듣는다. 나도 연구년으로 파견 다녀왔다고 인사를 했다. 짧게 하라고 하셨지만 난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음을 알기에 내가 2년 전 냈던 책과 매년 아이들과 만드는 문집을 보여주며 관심 있는 분은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인사 아닌 인사를 했다. 다른 한 분은 김포에서 3년 있다가 부천에 왔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음성과 감격의 떨림이 느껴지는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12명 부장 임명을 하고,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이 여러 안내와 부탁을 한다.
그리고 학년별로 모여서 교실을 정한다. 첫 부장을 하는 부장님이 카카오톡 사다리 기능으로 5명의 교실을 정해주셨다. 7개 반 중에 학년부장님과 업무부장님 두 분은 각각 1, 7반으로 고정되셔서, 나머지 5명의 교실만 정하면 된다. 나는 복도 한쪽 끝 교실이다. 조용히 있고자 한다면 끝쪽 교실이 최고로 좋다. 일단 오는 사람이 적어서 조용하고 편안하다. 게다가 남향 교실이라 햇살이 쏟아진다. 교실 배치도를 보면서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교실 중 하나라 아주 만족스럽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학생 명단을 뽑는다. 곧 만날 학생들은 가~사로 되어있는 통지표를 받아 갔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아직까지는 올라가는 반을 1반, 2반, 3반…이 아니라 ‘가반’, ‘나반’...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그러한 ‘가~사’로 되어있는 학생 명단 7개 중 하나를 뽑는다. A4 한 장마다 각반 23~24명의 학생 명단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다. 부장님은 그 A4 종이를 받아와서 각각 두 번씩 접어 책상에 놓으셨다. 그리고 각자가 하나씩 가져가면 그 종이로 인해 우리의 1년은 시작이 된다. 나는 ‘다반’이 되었다. 24명 학생이 보이지만 마지막 학생 이름은 ㄱ, ㄴ,... 순이 아닌 걸 보니 전학예정자인가 보다. 그렇다면 23명이다. 보통 교실에 책상 놓기도 그렇고 24명 이내가 정말 좋다. 예전에 대학원 다니며 논문 찾아볼 때에도 그 정도 인원(16~24명)이 좋다고 본 적 있다. 학생이 너무 적은 것도 너무 많은 것도 상호작용과 질서를 생각하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학년, 교실에 이어 반 아이들도 행운이 이어질 것인가? 이때가 가장 두근두근하다. 이름과 생년월일, 작년 반만 적혀 있는 이 종이에서 난 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동학년 중에서 작년에 이 아이들을 가르친 분이 있어서 살짝 여러 정보를 얻는다. 지도하기 힘들었던 아이들을 각 반에 고르게 나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이름이 같은 반에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고 들었다. 이건 늘 고려하는 것이다. 학생 구성은 그 반의 1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선생님들의 무심함 또는 실수로 인해 같은 이름의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면 그 반에서는 ‘큰 **’, ‘작은**’로 부르기도 하고 어쨌든 기분 좋지 않은, 불편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학년말에 반 배치를 할 때는 내가 맡을 아이가 아니더라도 같은 마음으로 좀 더 균일한 조건이 되도록, 그리고 동명이인이 없도록 여러 번 살펴봐야 한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돌이킬 수도 없는 채로, 어떤 교실에서는 불편함이 1년 내내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전까지는 정해진 교실 정리를 좀 하기로 했다. 난 4층에서 3층으로 짐을 옮겨와야 한다. 내가 싸둔 교실 짐은 라면상자로 치면 16 상자였다. 내 개인 짐, 교실 환경용품 등 연구년 하려고 들어가면서 절반을 버린 게 이 정도였으니 나도 짐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카트로 3번에 걸쳐 짐을 옮겨왔다. 교감선생님이 나도 오늘 복직인사를 한다고 하셔서 나름 갖추어 입고 왔지만, 결국은 오늘 이럴 줄 알았기에 작업용 잠바와 목장갑을 따로 가져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교사가 하는 일 중 육체노동이 절반이다. 그래서 교사 출근복으로는 일반적으로 청바지에 재킷 복장이 무난하다. 오늘처럼 어떤 일을 해도 올이 나가지 않을 만한 튼튼한 청바지, 그리고 가끔 불시에 생기는 출장이나 학부모 등 면담을 위해 정중함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재킷인 것이다. 해마다 교실에서 교실로, 그리고 4~5년에 한 번씩은 학교에서 학교로 짐을 옮겨야 하는 나는 오늘 또 이사를 한다. 아주 짐이 많고, 멀리 이사할 때는 남편과 아들, 딸이 와서 도와주기도 했지만, 올해는 학교 안에서 하는 것이니 혼자 하기로 한다. 내가 들어가는 교실에서 나가는 선생님은 때마침 군대에서 휴가 나온 두 아들을 불러서 교실 이사를 하셨다. 선생님과 두 아들이 함께 하니 순식간에 짐을 모두 옮겨 나가셨다. 난 “건강하게 잘 전역하세요.”라고 밖에 인사할 말이 없었다. 오가는 횟수를 줄이려고 카트에 한 번에 많이 담다 보니 교실 문턱에서 한번 덜컹하고 흔들리면 와장창 넘어지기도 두어 번…. 교실 이사는 결코 쉽지 않다. 이걸 거의 매년 해야 하다니…. 그래서 교실을 안 옮기고 그대로 쓰면 그 해엔 정말 행운인 것이다.
그리고 12시엔 점심을 먹는다. 일 년 내내 학교에서 아이들과 12:20에 식사를 하다 보니 나의 배꼽시계는 거의 12시에 맞춰져 있다. 오늘은 학교에서 각자에게 김밥 2줄과 진라면 매운맛 컵라면을 사주었다. “우와~!” 전엔 내 돈 내고 사 먹어야 했는데, 이거라도 있다고 다들 모두 좋아한다. 우리 집단은 너무 소박하다. 연구실은 히터를 아무리 틀어도 북향이라 그 냉기를 이길 수 없는지 너무 춥다.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감기라 어렵게 출근했는데, 더 심해질 것만 같다. 춥지만, 첫 식사인 만큼 반가움만 내보이며 맛있게 식사한다.
하지만 모두 추위를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작년엔 여기 너무 추워서 부장님 교실에서 회의했대요.”라고 하여 결국 정리 다 못하신 부장님 교실로 가서 차를 마시며 회의를 했다. 회의는 학년에서 맞추어야 할 것들, 알림장을 쓰게 할 건지 말 건지, 수학 익힘을 숙제로 낼 건지 말 건지, 과학 실험 준비물을 각자 가져올 건지, 담당자를 정할 건지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 걸 꼭 맞추기도 하지만 각 선생님마다의 스타일이 있으니 올해는 각반에서 자유롭게 하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다. 그리고 학년에서 맡는 업무를 무얼 맡을 것인지도 정한다. 학년 업무라고 하면, 학년부장님은 보통 교육과정을 작성하시고, 친목, 수합, 평가계획과 성적관리위원회, 인사위원회, 그 외 위원회, 학습준비물 이렇게 6가지가 있다. 보통 체험학습을 외부로 가면 그 담당도 정하는데 올해 체험학습은 안 하고 업체와 함께 교내에서 진행할 예정이라 이번에는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정하신 분들이 다 하고 남은 평가(2학기)를 맡게 되었다. 일의 경중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보통 본인 성향에 맞는 업무를 맡는다. 간식을 사거나 식사를 주문하는 쪽 일을 좋아하면 친목을 맡고, 수합하여 제출하기를 잘하면 수합을 맡고, 교육과정에 맞게 필요한 준비물을 잘 파악하고 엑셀에 금액과 수량을 정하는 등 예산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면 학습준비물 업무를 맡는다. 평가계획과 학업성적위원회는 같이 맡는데, 학기별 평가계획-담임교사별로 다르긴 하다-을 수합해서 전산시스템에 입력하고, 학업성적위원회 회의에 참석한다. 인사위원회는 교사들의 인사규정에 대해 회의를 하는데 이건 한 두 번에 끝나지 않는다. 안건이 있으면 학년별로 가서 의논하고 다시 의견을 모아서 다시 회의를 하고 그 반복을 몇 번이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원하는 분이 있으셔서 그분이 맡았다. 그 외에도 아주 많은 위원회가 있는데 그것들은 간단한 것들이라 한 분이 맡으셨다. 이렇게 많은 결정들을 하고 마쳤다. 휴. 이제 오늘 중요한 일은 대략 마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도 다급한 일은 내 교실을 정리하는 것이다. 교실 정리 시에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해야 한다. 오늘처럼 건조한 겨울날 옮겨온 상자를 풀어 적당한 곳에 짐을 넣고, 책이나 물건을 만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넣고, 버리고, 버리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상자는 비어 가고, 정리가 되어 간다. 그러면 물티슈로 여기저기 일단 눈에 띄는 먼지들을 치우고, 바닥을 정리한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 저녁 7시. 나는 7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나오면서 보니 깜깜했고, 아직도 3개의 교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나처럼 일이 보이면 끝을 보시는 분들이군. 열심히 하시는 건 좋지만 건강에는 그리 좋지 않으니 걱정이야.’ 하며 그게 어느 교실인가 눈여겨본다. 나중에 지나가면 그날 늦게 가시더라고 인사를 하곤 한다.
'아 피곤해.' 집에 와서는 씻고 바로 눕는다. 아까 점심때 받은 김밥 한 줄이 아직 남아있지만 먹기도 싫다. 내일 출근을 어떻게 하려나... 감기기운이 아직 있으니 쌍화탕을 하나 데워먹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