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2월부터 시작~
오늘 10시에 올해 맡을 학년과 업무를 정하기 위한 임시 모임이 있었다. 이게 한 해 시작의 첫 단추인데, 빠르면 12월에 정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늦어진 까닭은, 임명되어야 할 12명의 부장 중 희망자가 겨우 4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월에 본교로 전입해 오는 교사 중에서도 부장 희망을 받고자 기다리다 보니, 아이들이 오기 겨우 19일 전인 오늘에야 학년과 업무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회사에서의 부장님은 정말 오르고 싶고, 되고 싶은 승진의 개념이지만, 학교에서 맡는 부장은 회의와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고생 수당으로 월 15만 원 더 받는 그저 어쩔 수 없이 맡는 보직일 뿐이다. 그런 자리에서도 열의를 가지고 소신 있게 일하는 분들도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워라밸을 중시하는 터라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차라리 안 받고 안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부장이 되면 교실에서 실컷 쓸 수 있는 대용량 컬러프린터를 따로 준다. 그리고 매년 성과급시 고생했다고 점수를 더 주어 되도록은 가장 높은 S등급을 준다. 하지만 그런 혜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장을 맡겠다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선생님들이 모두 모였다. 교무실 옆 한 교실 칠판에는 44명 선생님들 인원수대로 정해진 업무표가 크게 인쇄되어 붙여져 있었다. 그 44칸에는 맡을 학년과 업무가 짝지어서 적혀 있다. 그리고 이제 각 선생님들이 작년까지 이 학교에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힘들게 근무했었는지를 증명하는 점수 순위대로 원하는 걸 정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각자 하고 싶어 하는 학년과 업무를 몇 가지 생각해서 순위를 정하고 순서를 기다린다. 드디어 1번 순위 선생님부터 정하기 시작한다. 4학년에 진로상담 업무를 정하셨다. 원래는 1학년을 하고 싶으셨지만, 1학년만 이미 3년을 하신 터라 2년 이상 동일 학년 근무 시에 다른 지원자가 있다면 비켜줘야 하는 규정에 걸려서 못하셨다. '아, 1순위인 저 선생님도 원하는 학년과 업무를 못 받으셨네. 그럼 나는 10순위인데 어떻게 되려나….' 이 학교에서 마지막 5년 차인데도, 학년과 업무가 묶여 있다 보니 정하기가 쉽지 않다. 부장 교사를 많이 기피하는 우리 학교는 부장 희망자가 없을 시엔 여러 기준에 따라 부장을 해야 하는 순위를 정한 인사위원회 규정을 몇 년 전 만들었다. 그 규정이 없던 해에 연구부장이 결국 안 세워져서 부장 없이 연구부 업무를 여러 명이 쪼개서 했던 해가 있었고, 그 해에 이 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정해진 것이다. 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이 학교에서만 3년 동안 학교 폭력 처리를 포함하는 인성 부장과 학부모회를 포함하는 문화예술부장을 맡았었기에 올해는 부장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부장을 해야 하는 순위가 되어서 부담을 느껴 다른 학교로 떠나는 분들도 있으니, 부장의 그 많은 업무와 회의와 책임감은 정말 맡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작년 2024년부터 담임 수당을 월 13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부장) 보직 수당은 7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인상했다. 보직 교사 수당은 20년째 동결됐던 것이고, 담임교사 수당은 지난 20년간 단 2만 원 올랐다니 밖에서는 교사들이 편하다고 이러쿵저러쿵해도 정말 실속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간 안 변하는 수당이라니….
요즘은 학년 난이도에 맞게 업무가 배정되어 있어서 보통 어렵다는 1, 5, 6학년은 업무가 좀 쉬운 편이지만, 2, 3, 4학년은 상당히 어려운 일과 묶여있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학교폭력사안 담당도 모두 2, 3, 4학년에만 각 1명씩 배정되어 있다. 14년 전 나는 부장을 맡은 지 2년 차에 6학년 담임을 하며 모두가 기피하는 인성부장을 맡았었다. 그땐 그랬다. 그해에 인성부장을 맡으면 가산점이라고 해서 아주 조금 혜택이 있긴 했지만 그 점수가 위로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공평하다 싶게 할 수 있는 학년-업무 조합이 잘 자리 잡아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 순위 선생님들이 정한 것들을 지워가며 내가 원하던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를 정했다. 4학년에 학습기자재 업무를 맡았다. 학년은 내가 선호하는 중학년이고, 업무는 사람 만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정했다. 일단 성공. 올해는 이렇게 일단 내 학급 아이들에 집중하고 싶고, 후배 등 동료 교사들에게도 좋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난 좀 치밀한 사람이라, 내 앞에 있는 9명 모두에게-단 모두와 친분이 있었기에- 각각 연락해서 어떤 학년과 업무를 하실 건지 사전에 미리 알아두었다. 물론 당일에는 1순위부터 예상과 달라지면서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던 학년과 업무 범위 안에서 결정할 수 있어서 만족했다.
내가 속한 4학년은 담임교사 7명, 그리고 영어전담교사, 체육전담교사 이렇게 9명으로 구성되었다. 서로 간단히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하긴 이날은 각자가 원한 대로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더 길게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랑 같은 학년을 하자고 사전에 얘기했던 분도 여러 이유로 동학년을 못하게 되어 서로 너무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이미 많이 겪어본지라, 어쩔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곧 받아들였다.
새 학년은 아이들만 떨리는 게 아니다. 친구를 만난다는 아이들의 그 설렘과는 또 다르게, 교사들은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으로 2월을 시작한다. 몇 학년을 하고 무슨 업무를 맡는지, 어떤 분들과 동학년을 하게 되는지…. 그 많은 두근거림을 지나 시업식은 하루씩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