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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원 Oct 24. 2023

교실 속 단상

  저는 초등학교 때 학급회의를 매우 진중히 여기셨던 5학년 남자 선생님, 칭찬을 많이 해 주시고 수학 경시를 지도해 주신 6학년 여자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줄곧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바랐고, 마침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존경하던 선생님들처럼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벌써 교단에 들어선 지 25년 차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커서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제게 연락을 합니다. 지난 5월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제자의 결혼식에도 다녀왔습니다. 지난주에는 이제 막 취업한 제자 4명과 만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6학년 때 첫눈 온 날 먹었던 붕어빵과 어묵을 기억하고, 졸업여행을 갔던 경주 불국사 단체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글과 그림, 장래희망도 물었던 앙케트 등이 담긴 문집을 보면서 한참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이 문집을 아직도 집에 가지고 있다는 아이들입니다. ‘다행히 내가 흘려보낸 사랑이 아이들에게 전해졌구나’하는 마음에 뿌듯합니다. 제가 선생님으로서 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1년 동안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삶 속에 선생님으로서의 제가 아주 조금이라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받았던 사랑을 저도 제 제자들에게 부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힘든 날도 저를 교실에 서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굳건한 마음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임용되던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환하게 맞아주었고 팔 벌려 달려왔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어린 저에게도 허리 숙여 인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의 인사는 생기가 없고,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학교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교는 여러 모로 안타까운 나날입니다.

  초등학교를 보면 학교와 교실 안에서는 교육과정과 관련된 문제보다는 학생들 간의 관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보다 학원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배웁니다. 더구나 보다 나은 대입 결과를 위해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르는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 나라는 작은 국토와 적은 지하자원이라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으로 지금의 ‘K~’라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고, 교사들은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학생들은 학교폭력에 힘들어하고 학부모는 자녀가 힘들어하분노합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교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의 학교를 회복하기 위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8 대입개편안과 고교학점제도 이를 위한 절차입니다. 하지만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잦은 변화 자체를 어려워합니다. 이 변화 속에 어느 학년의 아이들은 불편과 피해를 겪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자녀의 학부모님들은 농성을 한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교육계에 큰 변화가 있을 때는 교육당국의 발표와 기사들, 발 빠른 학원가의 설명회, 학부모들의 혼란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가 보다 만족하는 학교를 바라게 됩니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라고 해서 그 안의 문제만 생각하지 않고, 교육 전체의 문제를 같이 바라보고 고민합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영원히 초등학생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교육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가 선생님이기에 주변에서 문제가 있으면 제게 연락을 하곤 합니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너무 나무라서 과일 주스를 매일 만들어 드렸더니 나아졌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아이가 학교폭력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고3 선생님이 입시정보를 거의 주지 않고 두꺼운 책만 던져준다, 교실 아이들 자리를 2달 동안 바꾸지 않는데 말씀드려야 하냐, 중학교 가니 핸드폰 없는 아이가 단체연락을 위해 핸드폰을 사야 하느냐... 같은 선생님으로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게 말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조언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에 적절한 조언을 주곤 합니다. 이럴 때, 무엇이든 같은 고민이더라도 답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전학을 권할 때도 있습니다. 자리 잡은 학교로 가는 전학은 아이들 관계가 이미 형성되어 적응이 어려우니, 차라리 신설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 합니다. 신설 학교에선 누구나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특성과 친구 관계, 또는 선생님들의 특성에 따라, 경우에 따라 모두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교육은 이렇습니다. 학생들이 각자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고민을 통해 답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것. 많은 아이들의 배움은 모방을 통해 일어나지만, 자랄수록 결국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 실천을 갖추어야 합니다. 때로는 지나친 사랑이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가방을 챙기는 것, 옷을 입는 것, 신발끈을 묶는 것조차 어른들이 너무 오래 도와주어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그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기를 대신 써주신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부모나 교사 모두에게, 아이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독립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돕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해낼수 있도록 돕는 범위 안에서만 도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변함없는 것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추구합니다. 한결같은 사람, 변함없는 가치. 제가 자랄 때는 ‘좌측통행’을 배웠지만 이제는 ‘우측통행’을 배웁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 서기’가 지침이었고, 서있는 줄과 다르게 걸어 올라가는 줄은 사람들이 계속 걸어 올라갑니다. 하지만 2007년, 엘리베이터 한 줄 서기로 인한 엘리베이터 고장과 사고가 많다는 이유로 정부에선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또, 전에는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하라고 배웠지만 지금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고, 도와주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리면 안 된다고 계속 지도하지만, 요즘 많은 아이들은 ‘맞으면 너도 똑같이 때려라’라고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이렇듯 학교나 사회에서 열심히 가르쳤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밝혀지거나 사장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은 항상 옳은 것, 그리고 오래도록 필요한 것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교육의 내용은 진리에 가까운 것이길, 학생은 건강한 호기심이 있길, 그리고 교사는 흔들리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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