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데일밴드를 붙일 수가 있다면..?
남의 나라에서 넘어져보니 드는 생각의 생각의 생각들
남의 나라에서 사는 자유로움도 분명
잘 즐기며 지내고 있지만,
막상 넘어져보니
서러움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왔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인데
그 순간 나는 너무 작게 느껴졌다.
바람이 거세게 분 하루.
수업이 끝나고,
예약한 식당에 늦을까 봐 서둘렀다.
그날따라 유난히 태풍처럼 몰아치던 바람 탓일까,
분주했던 내 마음 탓일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선물 받은 모자가 휭— 하고 날아갔다.
나는 모자만 보고 달렸다.
그 순간,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미끄러졌다.
얼마 만에 넘어져본 대참사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코앞에 땅바닥.
손바닥으로 짚지 않았더라면
얼굴이나 치아를 다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모자는 정류장 앞 나무에 걸려
도로 밖으로는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절뚝이며 모자를 가방에
주섬주섬 쑤셔 넣어버렸다.
버스가 나에게로 돌진하듯 오길래
피가 나는 손은 대충 훑어보곤,
생각할 겨를 없이 우선 약속을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다 지인분에게서
30분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식당에 가 늦어진 상황을 전하고
근처 약국을 물어, 필요품을 구매했다.
구글 맵을 켤 정신 여력은 없었지만
여기서 또 넘어지면 진짜 크게 다친다란
생각에 겨우 정신을 부여잡았다.
까맣고 빨갛게 물든 손바닥을
식당 화장실에서 흐르는 물에 씻어버리니
그제야 마음이 차츰 진정됐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도, 손바닥도
쉼 없이 계속 쓰라렸다.
목구멍도 욱신거리며 따끔거렸다.
한국이면 언제든 쉽게 병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나
여기선 진료 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게 이상하게 더 서럽게 느껴졌다.
같은 상황이어도,
장소가 감정의 증폭장치가 되기도 하나보다.
똑같이 넘어질 수 있는 얼마든지 있을 해프닝에
유난스레 더 작고 서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달리듯 지내왔는데,
간만에 정말 제대로 꽈당~ 넘어진 날이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묘하게 고립된 느낌과
당분간 한국 출국이 어렵단 사실에
속상함이 번져나간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내가 무방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삼십 분 늦은 지인이 무척 미안하다고 했지만,
실은 그 시간이 오히려 참 다행이고 필요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내가 이 약속장소에 나와 앉아 있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넘어져서 치아 다치지 않은 것도,
내복 입고 나간 덕에
무릎에 큰 피멍이 들었지만
피가 철철 나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고,
몸까지 다쳤는데
모자마저 잃었으면
배로 속상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상처로 약국에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무튼 그렇게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걷고 있었다.
그 순간, 아파트 근처 강가에서
릴리를 우연히 마주쳤다.
평소 친근하게 지내던,
아파트 청소를 해주시는 스페인 분 릴리.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반겨주셨고,
나는 순간 가족을 만난 것처럼
극도로 반가워 꼭 껴안았다.
그녀는 항상 구글 번역기를 통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스페인어만 가능하시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전했다.
그러더니 영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미안하다는 말에 더 무거운 마음이 들어,
내가 다니는 도서관의 무료 영어 수업을
곧장 소개해드렸다.
그녀는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 2시에 퇴근한 뒤 또 다른 일을 가기 때문에
내가 다니는 오전 수업은 어렵다고 했다.
대신 저녁 수업에 가고 싶다고 해서
레벨 테스트 담당 선생님을 소개해드리기로 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는데,
그때마다 이미 새벽에 출근한 릴리는
늘 아파트 복도를 청소하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는 매번 그녀의 성실함과 다정함에
진심으로 감동받아왔다..
이사 온 이후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이웃이라 느낄 수 있었던 분.
그날 약국에 가보니
손바닥 상처 하나에도
세 가지 과정이 필요했다.
먼저 흐르는 물에 씻고,
소독약을 바른 뒤,
그 위에 데일밴드를 붙이는 것.
그걸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다치면,
씻어 흘러내고, 진정시키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야
덮을 수 있는 거구나.
마음에도 데일밴드를 붙일 수 있다면,
그전에 반드시 필요한 건
세척과 처치라는 정성스러운 과정일 거다.
그리고 아마 이날,
릴리는 내 마음에
그 조용한 ‘처치’를 해준 사람 같았다.
진심 어린 따뜻한 마음과 눈빛,
그리고 시편 한 구절과 기도들.
그게 내 마음 어딘가를 가만히 눌러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 준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보내온 문자에는
내가 요즘 매일 시도하고 있는 침묵 기도,
시편 묵상과
닿아 있는 말씀을 인용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날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고,
시편 91편의 구절을 함께 보내주셨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깊고 따뜻한 위로를 받은 하루.
그 하루를 지나 보내며,
남의 나라에서 넘어진 일 하나가
이렇게 많은 생각의 문을 열 줄은 몰랐다.
넘어졌던 상처 위에 붙여진 건,
다친 손바닥이 아니라
묘하게 따뜻해진,
마음의 데일밴드였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넘어지던 일 투성이었는데,
이럴수록 더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의 나라에서 내가 모르는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릴리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