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도 점수도 없지만, 정체된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를 원할 때
시험을 의미하는 ‘테스트’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테스트는
그 시험과는 무관하다.
이 테스트에는 정답이 없다.
점수를 매겨 가치를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의도적으로 시도해 보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의지를 갖고 선택한 조건,
내가 정한 방향 안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탐색의 시작점을 뜻한다.
이것저것 시도해 본다는 의미에서,
나 스스로를 어떤 낯설고 새로운 상황에 의도적으로
놓이게 만드는 이 테스트는-
결코 해보지 않았을 불편해 보이는 선택을
그냥 “해”보는 것이다.
노력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보는 일.
이런 테스트의 주체가 내가 된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무의미해 보이는 시도조차
막상 해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의 “취향” 내지는 “성향”에 대해 면밀히 몰랐던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나’라는 사람을
과거의 시간 여행을 통해 들여다봤을 때,
나름대로 옹골진 고집이 있어, 굳어져있던 확신이나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게으른 욕심이 올라올 때가 많았다.
확실히 할 줄 아는 일, 보기에 ‘이상적인 결괏값’만이 추출될 선택만이 반드시 최선일 거란 생각은
가끔은 위험하고 고립된 판단일 때도 많다.
나에게 새로운 옵션을 주지 않고
반복되는 삶만을 추구한다면,
조금 지루한 누군가와의 대화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는 정체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테스트라는 것도,
생각보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은 다행히 아니다.
그저 내가 당연하게 여겨온 습관이나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 의문을 갖고, 호기심을 갖는 것부터가
가벼운 시작이다. 때로는 무언가에 대한 미세한 기대와 호기심만 있어도 충분하기도 하다.
( 가령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아주 사소한 호기심으로도 시도해 볼 때도 있다.)
그런 시도들이 때론 나에게 기대도 못하고 받는,
크나큰 선물처럼 새롭고 깊은 의미가 되어 오기도 한다. 이 재미를 한번 맛본 이상 이렇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든다.
새로운 테스트를 나에게 제안해 보고,
그 제안에 기꺼이 발을 담가보는 것이다.
발을 담그고 나면—그게 뜨거울지, 미지근할지, 차가울지는 절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건, 내가 몰랐던 나의 흥미,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새로운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 스스로 수락한 테스트를 시도해 보면,
그간 내가 안다고 자부했던 것들이 대부분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배웠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함부로 판단하거나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 덕분에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그조차도 몰랐던 나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얼마나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었는지를
촘촘히 보게 된다.
늘 새로운 시도가 긍정적인 방향과 결과로 이끌어주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열린 생각과 마음을 대했을 때 내가 삶에 대하는 태도와 내 시야에 들어오는 뷰가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익숙함을 넘어선- 나를 다시 새롭게 만나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재밌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나에게 테스트를 시도해 보라고 내밀어 본다. 원래의 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나의 일부를 알고 배우고 싶다.
그러니 익숙한 선택지가 아닌, 해보지 않은 선택에
조금 더 용기와 애정을 내어 기꺼이 발을 담가보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