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부를 봐주고 있을 때였다.
남편은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한 것 같았다. 나는 국어보다 수학을 더 어려워하는 아이를 보며 심란해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편이 다가와 슬쩍 물어본다.
"당신, 팬티 입었어?"
순간 아이와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가 나를 쳐다봤다. 남편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남편을 쳐다봤다. 나는 내가 팬티를 입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팬티를 입었다고 말하려는데 남편이 그제야 그윽이 나를 쳐다본다. 이 시선 뭘까? 지금 애가 듣고 있는데 이건 뭐지? 신혼도 지난 지 오랜데 갑작스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발언은 뭐지? 갑자기 더워졌다.
"엄마, 팬티 안 입은 거야?"
아이가 묻는다. 내가 입었다고 말하니, 아이가 아빠한테 말한다.
"엄마 입었다는데 아빠?"
남편이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응. 엄마가 과연 팬티가 있을까 싶어서."
"빨래를 개는데 엄마 팬티가 산더미였어."
"그러고 보니 너무 걱정돼서 말야."
남편이 아이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제야 웃음이 터졌다. 빵 터지는 내 웃음소리에 아이도 영문을 모른 채 같이 웃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말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해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아이도 따라 웃으며 이러다가 엄마 울겠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이 이번에도 '엄마 웃기기에 성공했다'며 아이에게 파이팅 세리머니를 보낸다.
사실이다. 정말 입을 팬티가 없었다는 것이. 요 며칠간 빨래를 못하고 안 하고 그랬다. 핑계는 게으름이었지만 챙겨 입을 때마다 구석에 숨어있던 팬티를 끝까지 찾아내어 입었다. 그러다 휴일이었던 오늘 남편이 빨래를 했다. 보통 낮에 내가 세탁기에 넣긴 한다. 그러고 잊어버려서 그렇지. 퇴근 후 남편이 탈수-건조-개기-넣기까지 하는 것 같다. 세탁기 뒤는 생각 안 해본 지 오래다. 언젠가 남편이 각 잡고 갠 내 속옷을 다른 곳에 넣어두어 내가 못 찾고 짜증을 냈던 적이 있는데 지금 떠올리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저녁에 샤워를 하려고 서랍을 열어보니 차곡차곡 속옷들이 개어져 있다. 참 많이도 나와있었나 보다. 디테일은 한참 부족하지만 내 할 일 니 할 일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이 의도된 질문, 뉘앙스까지 의도된 이 질문으로 눈물 찔끔하도록 웃어서 애 공부고 뭐고 답답한 마음이 햇빛 속에 나 앉은 듯 사라졌다. 오늘 남편의 미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빨래 잘 개어주는 것? 아니다. 웃겨주는 것. 그것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