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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Jan 16. 2021

달봉이 (1)

달이였던 아이




지리산에 갔던 이야기가 생각나 써보려고 아이패드를 열었다. 그러면 귀신같이 알고 다가오는 이가 있다. 아이? 아니다. 아이는 이미 내 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이는 그냥 나와 한 몸 같다. 아이는 어젯밤에 잘 때도 자기를 이렇게 저렇게 껴안아 달라고 팔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엄마에겐 그나마 밤 11시가 아이를 재우고 난 뒤의 꿀 같은 내 시간인데, 단단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꿀은 녹아 흘러 꿀잠이 된다. 이렇게 아이를 보듬고 자는 겨울밤에는.


내가 무얼 하려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바로 내 코 앞까지 다가오는 그 귀신은 바로 달봉이. 그렇다. 지리산보다 먼저 해치워야 할 녀석은  달봉이 바로 너다. 이 녀석은 올해 7년째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다. 머무르고 있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 녀석이 집에서 나갔다 돌아온 지 횟수로 열 번은 되어서이다. 어쩌면 더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은 문을 열어놓은 틈을 타서,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려, 문을 들이밀고 나가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우리 집 고양이다.


이 녀석은 내가 아이를 낳고 다음 해, 친정집 근처에서 데려왔다. 외국생활을 하러 떠나게 된 동생의 고양이를 우리가 키우기로 했고 이동장에 넣어 차에 태우기만 하면 되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별이라고 했다. 별이를 데리고 나오기 전에 조카들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를 아파트 공터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조카들이 밖에서 키운다는 길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달이라고 했다. 그때까진 달봉이가 아니라 달, Moon이었다. 달이의 첫인상은 뭐랄까. 큰 눈이 블랙홀 같았다. 예쁘다기보단 귀여웠고 첫눈에 넉살 좋은 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달이는 처음 본 사람의 무릎에 앉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몸을 부비고 에옹 에옹 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긴 하지만 길고양이 하고는 무턱대고 몸을 부비지는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마치 나를 찜한 것처럼 내 무릎에 올라와 내 품에서 한동안 있었다. 나는 움직이면 달이가 어딘가로 가버릴 것 같아 숨죽이며 녀석의 머리와 목덜미를 조심스레 만져주었다. 그렇게 있는 시간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가져간 사료를 주니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아기 티는 벗어난 어린 고양이였고 어미와는 어떻게 떨어지게 되어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했지만 길 위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스치고 말 뿐인.


조카들과 인사하고 별이녀석이 들어있는 이동장을 차에 옮기고 있을 때였다. 나는 차에 올라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뒷좌석으로 아까 그 고양이 달이가 올라타는 게 아닌가! 달이는 나를 보고 에옹거렸다. 나는 반가워서 나에게 부비도록 해 주고 녀석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짐을 다 싣고 떠나기 직전까지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도 얼른 기회를 틈타 차에 탔다. 마치 나를 데려가 달라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렇게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남편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남편은 두 마리나 세 마리나 비슷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지금으로써는 착각이었지만 그땐 두 마리에서 한 마리 더 늘어난다고 뭐 다를까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건 나도 그랬다. 그렇게 해서 달이는 우리 차에 탄 그 길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조카들도 달이의 길고양이 탈출을 기뻐했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가 되었다. 첫째 이후는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이는 그때 우리가 차 문을 닫고 그냥 떠났으면 되었다. 그렇게 못한 것은 그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길고양이에 대한 욕심이라니, 돈이나 집에 대한 욕심도 아니고! 아무튼 그땐 그랬다. 달이는 우리 집에서 잘 지냈다. 사람으로 치면 무던한 성격에 애교도 있었고 특히 나를 좋아했다. 남편은 달이가 내 무릎 위에 있으면 마치 자리를 뺏긴 것처럼 아쉬워했다. 가끔 널브러져 자는 달이 앞에서 “정말 그럴 거야? 거긴 내 자리라고!” 라며 괜스레 가드를 올리며 씩씩대기도 했다. 달봉이는 겨우 돌아눕는게 최선이어서 그 모습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우스꽝스러웠다. 고양이도 사람의 서열을 따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처럼 고양이도 제각각 성격이 달랐고 이미 있던 고양이에게 신경을 더 써줘야 했다. 얘네들은 치열하게 서열싸움도 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서로가 대면 대면하지만 한때 바닥에 털이 한 움큼 빠져 있는 것을 보다 보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달이는 그 틈에서 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믿으며 서열 최하위권에서 금방 높은 순위로 올랐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생각보다 잘 있는 것 같았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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