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먹고 걸으며 생각한 것들
[ 거리에서 만난 일상의 음식들 ]
뉴욕에서 우리가 처음 먹은 음식은 (비교적) 얇고 커다란 조각 피자였다. 잠깐의 눈붙임 뒤 창 밖은 이미 어둠이 가까워졌다. 호텔 근처에서 평점이 높은 곳으로 찾아간 '미국식' 피자 가게는 카운터 뒤편의 주방에서 이제 막 나온 김이 모락모락 한 피자와 좀 더 오래된 피자들이 둥근 판 채로 쇼케이스에 얼굴을 내미는 그런 곳이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실내와 실외에도 테이블과 의자를 갖춰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는 한국의 분식집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99센트 피자집이 많았다지만 우리가 고른 두 조각의 피자와 콜라는 12달러였다. 따뜻하게 받아 든 접시는 제법 맛있었지만 예상가능한 익숙한 맛이었다. 낯선 뉴욕의 거리에서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쉽게 눈에 띄었던 조각 피자집들은 윌리엄스버그로 가는 브루클린의 조식당이 되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눈을 뜬 거리의 맛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의 푸드트럭이었다. 빵과 소시지, 머스터드와 케첩으로 조립된 핫도그와 프라이즈를 먹고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두리번거리다 '할랄' 트럭 앞에서 멈췄다. 내가 고른 양고기 덮밥은 생각했던 식감이 아닌 소시지에 가까운 느낌의 고기였지만, 멕시칸 푸드를 연상시키는 미지의 소스들과 샐러드 같은 야채, 흩날리는 노란 쌀밥이 어우러져 묘한 포만감을 주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마지막 날 센트럴 파크 앞에서 유난히 미소가 밝고 친절했던 아저씨의 푸드트럭을 들렀다. 이번엔 치킨 덮밥과 wrap 형태의 치킨 기로, 한국식 핫도그 'Corn dog'까지 시켰다. 콘도그는 빵 겉면이 기름에 구워진 듯한 식감과 묵직한 소시지의 비율이 우리가 알던 맛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고, YMCA 숙소로 돌아와 로비에서 먹었던 덮밥과 기로는 한층 풍성한 야채와 고기와 밥의, 뉴욕의 거리에서 만난 가장 든든한 맛이었다.
한국에도 있거나 있었거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듣던 made in America 브랜드들도 본토의 맛을 느끼고 싶었다. 이제는 거의 지구 브랜드라고 봐도 무방할 맥도널드는 생과일 조각과 건과일이 믹스된 아침 메뉴의 오트밀 토핑이 인상적이었고 스타벅스의 아침에도 시금치 페타치즈 랩 같은 다양한 베이커리가 눈길을 끌었다. 센트럴파크 초입의 스타벅스에서는 세수를 하거나 팔을 베고 누운 거리의 사람들, 이제 막 운동을 끝낸 러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텀프타운, 데시리온 같은 뉴욕의 카페들을 통해 핫 아메리카노가 고정 메뉴인 나조차 라테를 주문하게 되었다. 낙농업의 규모와 품종의 차이인지 그랜드 센트럴역 푸드홀에서 찾은 쉑쉑버거의 유난히 짙은 밀크셰이크 역시 유제품의 농도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었다. 미국에서 유학 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주변인들이 공통적으로 그리워하던 멕시칸 푸드 체인 ‘치폴레’도 여러 지점이 눈에 띄었지만 우드버리 아울렛 푸드홀에서 맛보았다. 코엑스 몰의 쿠차라가 제법 근접한 맛과 형태라고 하는데 직접 먹어보니 고기와 소스의 맛, 밥의 양 등 다른 포만감을 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바토스 같은 코리안 멕시칸 바가 더 만족스러웠다. 토핑과 소스 면에서 샐러드 라이프의 옵션을 다양하게 한다는 점이 미국 젊의 세대의 지지를 이끈 것일까. 내게 바나나 푸딩을 알려준, 이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메그놀리아도 반가운 마음에 하나 맛보았지만 왜 인지 거의 10년 전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먹은 그 맛이 더 그립게 느껴졌다.
빠르고 쉽게 no tip으로 접할 수 있는 뉴욕 거리의 음식들 속에서 우연히 시도한 홀푸드마켓의 hot Deli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에이스호텔 뉴욕점에 머물 때 물과 맥주를 찾아 떠난 마트 쇼핑에서 1층의 아일랜드 대부분을 구성한 약 50여 종의 구운 야채, 미트볼과 맥앤치즈, 파스타 등 풍성한 진짜 음식의 라인업을 보니 갑자기 식욕이 올랐다. 시즈닝이 강할지도 몰라 작은 크기의 종이 패키징에 욕심내지 않고 테이스팅 수준으로 담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무게를 다는 키오스크 계산까지 마쳤다. 호텔로 돌아와 맛을 보니 과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온기가 느껴지는 슬로우 푸드란 느낌이 들었다. 얼마 만에 씹어보는 통 야채의 요리된 맛인가. 뉴욕 스트릿 푸드들과의 일주일을 보내니 홀푸드마켓의 가장 접근성이 높은 위치에 과감히 배치된 hot Deli 전략에 공감이 되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통창으로 마감된 건물의 최상층엔 Seating 공간이 있어 창 밖 풍경을 즐기며 먹을 수도 있었다.) 효율이 중요한 메트로폴리탄에게도 때로는 묵직한 따뜻함이 허기를 온전히 잠재우는 건강한 음식이 필요한 것이다.
[ Tip이 있는 진짜 밥을 찾아서 ]
뉴욕에서 코리아타운보다 가보고 싶었던 곳은 사실 차이나타운과 리틀이틀리였다. 이국 속의 이국이 보이는 풍경이 궁금하기도 하고 기왕이면 그곳의 살아있는 맛도 경험하고 싶었다. 관광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Canal street 지하철역을 나와 마주한 장면은 당연하게도 인천 차이나타운과 사뭇 달랐다. 도처에서 명품 짝퉁들을 팔고 있는 흑인들의 모습이 현실이 아닌 영화처럼 느껴졌달까. 좀 더 걷다 보니 중국풍의 건물들과 동양인의 얼굴들이 숱하게 보였지만 역에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명 딤섬집 '조 상하이'를 찾아가는 여정은 꽤나 긴장되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곳에서 맛으로 제대로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우리 두 사람은 3~4인분에 육박하는 음식들을 마구 시켜버렸다. 게와 고기가 소로 함께 쓰인 점이 독특한 대표메뉴 샤오롱바오즈에 허기를 채울 마파두부와 볶음밥, 그리고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국물이 있는 면 요리와 맥주를 주문했다. 현금만 받아 가게 앞에 ATM까지 있던 이곳은 오후 5시경에도 꽤 넓은 실내가 빈자리 없이 찼고 동양인이 아닌 외국인들의 비율도 반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서버들은 모두 중국인으로 보였는데 빠르게 안내해 준다는 점에서 나는 만족스러웠다. 샤오롱바오즈의 고향인 상하이에 비해 사이즈가 컸던 딤섬은 허겁지겁 먹었지만 피가 조금 두꺼운 점이 아쉬웠다. 역시 밥심이 부족했는지 한 대접이 나온 볶음밥에 마파두부를 함께 먹는 것이 가장 즐거웠는데 면과 함께 나온 튀김고기까지 먹다 보니 도저히 마무리할 수 없어 남은 음식들은 포장을 요청했다. 미드에서 많이 보던 전형적인 각이 진 종이 포장으로 깔끔하게 담아준 볶음밥과 마파두부를 이튿날 아침까지 먹어서인지 한식당의 도움 없이 뉴욕의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두 차례의 신라면 컵라면은 예외다)
도착 첫날 택시기사님이 말씀하신 뉴욕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스테이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인기가 많은 '피터루거'는 예약조차 불가했고 브루클린 본점까지의 이동 동선도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이렇게까지 비싼 음식을 편하지 못하게 먹어야 할까 생각하며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그러다 여행 말미가 되자, 꼭 그 브랜드가 아니어도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이면 이 중심가의 어디를 가도 보통 이상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는 사고회로를 돌려 MOMA에서 가까웠던 엠파이어스테이크 타임스퀘어점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1920년대 시작하여 일본까지 진출한 제법 유서 깊은 이 체인 브랜드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모두 찾는 곳이었다. 예상했음에도 역시 높았던 가격의 벽 앞에서 잠시 방황했지만, 고급 부위가 포함되었다는 2인 스테이크에 나파밸리산 와인과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사이드로 곁들였다. 기대보다 부드럽고 향긋했던 와인에 취해서일까, 압도적인 크기와 비주얼의 티본을 닮은 스테이크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접시의 잔열에 구워 한 점씩 덜어주는 정성 담긴 서빙이 더해져 씹고 마시고 음미하는 단순한 반복이 꽤 강력한 기억이 되었다. 뉴욕을 떠올리게 하는 단 하나의 음식을 꼽는다면, 단연 비일상적인 특별한 경험의 한 끼였던 스테이크다.
[ 명소가 된 미식공간들 ]
Timeout Market은 1968년 런던에서 반문화적 주제를 다룬 미디어사로 시작된 Timeout이 2014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런칭한 로컬 레스토랑 큐레이션 푸드홀이다. 2018년 여행에서 들린 리스본점은 거대한 폐공장을 리노베이션 한 곳으로, 큰 중앙 테이블에 낯선 이들이 모여 앉아 음식과 술을 즐기는 곳이었다. 현재 미유럽권을 중심으로 9개 점포를 운영 중이며 아시아 최초로 오사카에 한큐한신 그룹과 파트너십으로 2025년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찾은 뉴욕점은 2019년 브루클린 덤보에 위치한 곳으로 Empire Stores라는 미국 전쟁 전후 1869년에 지어져 커피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역시 리노베이션 한 복합단지 내 자리했다. 총 2개 층으로 약 700평 규모에 25개의 다이닝과 디저트, Bar가 어우러진 곳으로 오픈 시간엔 아직 열지 않은 곳들도 있었지만 외부 테라스가 딸린 자리의 팬케이크 집이 붐벼 보였다. 맨해튼 브리지와 주변 공원의 행인들을 바라보며 스콘과 당근케익을 추가한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와 커피를 즐겼다. 이 건물의 중간층은 오피스와 가구 쇼룸 등이 구성되어 Timeout은 다시 가장 최상층의 Roof top에서 나타났는데 이곳의 뷰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장관이었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해튼 브릿지, 그 사이를 도도히 흐르는 East River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공원과 회전목마까지 뉴욕의 시그니처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명당이었다. 이미 1층에서 배를 불린 우린 거의 눕는 자세가 가능한 벤치에 편히 앉아 그 풍경들을 천천히, 가득 눈에 담았다.
맨하튼의 끝자락, Pier 17에는 1835년 Fulton Fish market이 시작된 빌딩으로 2022년 미슐랭 3 star 쉐프 Jean-georges의 디렉팅으로 재개발된 Tin Building이 있다. 이곳은 2개 층, 1,500평 규모로 파인 다이닝과 패스트 캐주얼, Bar와 프라이빗 다이닝 등 16개 스토어가 큐레이션 된 뉴욕에서 손꼽히는 트렌디한 미식공간이다. 타임아웃 마켓과 비교하여 틴빌딩은 감각적인 고급 식료품점의 느낌으로 이런 느낌의 공간이 식품관으로 구현된 백화점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했다. 지리적으로 틴빌딩의 상권은 세계 금융의 중심, Wall street과 부촌으로 꼽히는 Tribeca로 볼 수 있다. 치열한 맨해튼의 하루 끝자락에서 브루클린을 바라다보는 부두의 낭만적인 정서와 신선한 해산물과 와인을 즐기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사는 뉴요커들을 위한 공간인 걸까. 스트릿 푸드만으로도 이 정도 물가를 예상해야 하는 도시에서, 틴빌딩의 큐레이션 된 꽃과 디저트와 신선한 식료품과 요리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란 상위 몇 프로의 삶일까.
1898년 설립된 나비스코 오레오 제조공장을 벽체와 지붕 구조물을 유지한 채 재개발하여 1997년 오픈한 첼시마켓은 뉴욕 이색 미식공간의 원조다. 연간 600만 명이 방문한다는 이곳은 식료품점과 레스토랑, 카페가 약 60여 곳 입점했으며 무엇보다 구글이 입주하며 상권을 활성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곳이지만 무너진 벽 사이로 멈춰진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조금은 환상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 Better를 위한 아이디어들 ]
Hudson river의 pier들 사이에 위치한 리틀 아일랜드는 꼭 눈과 다리로 확인하고 싶었던 곳이다. 뉴욕 어느 부자의 기부로 조성된 기금을 토마스 헤더윅의 창의적인 설계를 통해 화분들의 연결을 통한 ‘물 위에 떠 있는 공원’의 컨셉으로 구현된 이곳은 아담한 규모에 아기자기한 포인트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포장해 온 베이글을 먹기 전 들린 화장실은 공원의 미관을 해치지 않게 구조물 밑으로 숨겨져 있었는데 내부의 천장 마감이 손으로 꾹꾹 누른 점포 같은 느낌이 매우 독특했다.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컬러풀한 탁자와 의자들이 놓인 중앙광장, 구불구불한 산책로의 중간마다 등장하는 회오리 모양의 조형물, 밟은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 뮤직박스까지. 그중에서도 백미는 허드슨 강을 배경으로 한 원형 무대와 계단이었다. 계단에 앉아 강을 마주하고 저 멀리 보이는 게 저지타운일까 천천히 관망하노라면 빈 무대가 전혀 아쉽지 않게 느껴졌다.
이름 그대로의 리틀 아일랜드를 작별하고 첼시마켓 인근에서 시작되는 하이라인에 올랐다. 옛 철도길을 재개발하여 만든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수직 가든 겸 산책로라는 셜록현준 유튜브 내용이 떠올랐다. 산책에 딱 알맞은 날씨이기도 했지만 어쩜 이렇게 수수하지만 옹골진 식생들이 잘 자라나는지, 그 여백의 공간마다 작은 벤치를 두어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지 실제로 보니 더욱 경탄스러웠다. 무엇보다 좀 더 높아진 눈높이로 맨해튼의 마천루와 이색적인 건축물들을 관찰하고, 복잡한 도심을 내려다보는 새로운 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한 번쯤 이곳을 걸어볼 이유가 되었다. 하이라인의 끝엔 베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거대한 유리온실 같은 Javits 컨벤션 센터를 지나 다시 허드슨 강가를 향해 걷던 일요일의 점심 무렵엔, 무수한 뉴욕의 러너들을 사방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뉴욕의 동과 서, Hudson river와 East river를 반 회전하는 서클라인 크루즈에서 보였던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아래의 도미노파크는 육중한 벽돌건물의 외관에 유리 마감의 모자를 쓴 독특한 모습에 이끌렸던 곳이다. 과거 뉴욕시장을 재패할 만큼 높은 점유율을 보였던 설탕 공장 부지가 재개발되어 맨해튼 브릿지와 강변을 따라 걸으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공장 건물은 오피스 용도로 리뉴얼되어 부동산 디벨로퍼에 의해 분양 중이었다. 맨해튼보다 합리적인 임대료의 리버뷰와 파크뷰를 갖춘 매력적으로 옵션으로 브루클린의 용도는 창작에서 주거를 넘어 업무로까지 확대 중이다.
[ 뉴욕의 심장과 기억 ]
맨해튼 지도의 1/10은 차지할 만큼 가공할 면적의 센트럴파크는 미드타운보다 위쪽에서 시작되니 뉴욕의 허파라고 불리지만 위치상으로는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워낙 거대한 규모로 자칫 길을 잃기 쉽다는 말을 듣고 나니 미술관을 오고 가며 지나치면서도 쉽게 들어가지지 않았다. 뉴욕의 마지막날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 스타벅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드디어 센트럴파크를 밟았다. 밤의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검붉은 푸른빛의 하늘, 아직 적막한 공원을 걷다가 'Strawberry Fields' 표지판을 발견했다. '딸기밭'이라는 대명사일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동생이 들려줬던 비틀스의 독특한 분위기의 노래가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A quiet zone'이란 부재가 붙어있어 어떤 의미의 공간인지 궁금했다. 오솔길 같은 언덕을 따라 오르니 'IMAGINE'이란 글자가 가운데 새겨진 예쁜 모자이크 타일들과 헌사된 꽃들이 바닥에 한데 놓여있었다. 존 레넌을 추모하는 의미의 공간이었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1980년 40세였던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던 곳이 바로 뉴욕이었다.
녹음이 우거져버린 강변의 바위에 서서 마천루들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을 찍고 그곳을 기점으로 우리는 다시 들어왔던 공원 입구를 향해 걸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에게 헌정된 벤치들을 따라 걷다 점점 늘어나는 바이크와 러너들을 지나 으슥한 곳의 부랑자 같은 흑인 몇 명도 보았다. 아주 잠시 이 도시에 머물 뿐인 우리가 마주친 흑인과 백인의 삶은 왜 이리 달라 보이는 것일까. 건강을 챙기며 공연과 스테이크를 즐기는 백인들과 지하철과 차이나타운, 공원에서도 어두운 모습의 흑인들. 다음번 뉴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본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넌 날, 양 날개를 펼친 듯한 신기로운 외관의 Westfield shops at the Oculus를 지나 911 메모리얼을 만났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현장 두 곳을 지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뷰의 폭포로 재탄생시킨 공간이었다. 사각의 프레임에는 그날 사라져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고, 그 틈 사이로 하얀색과 보라색 빛의 꽃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바닥면적 만으로도 거대했을 이 건물들 속에서 예기치 못한 생의 마지막을 맞닥뜨린 사람들. 시원한 물소리로 복잡한 도심으로부터 나그네를 잠시 차단시키는 웅장한 두 개의 홀은 오래도록 매워지지 않을 뉴욕의 상흔이었다.
Outro
운동 유튜버 빅씨스와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유튜버 임상아 님. 어쩌면 내 첫 뉴욕 여행은 이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2020년, 코로나 시절을 보냈던 베트남 하노이에서부터 나 자신을 단련시키는 법을 알려주었던 아름다운 철의 여인들이었다. 타인의 반응과 평가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그러나 미소를 잃지 않는 외유내강이 되고 싶다는 동경과 선망을 내게 심어준 언니들. 그녀들을 내 롤 모델이라 여기며 어록들을 적어가며 문장들을 읊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감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의 풍경엔 내겐 너무 멀고 낯선 뉴욕이 있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그녀들의 동선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트라이베카와 소호, 허드슨 강변의 동네들이었다. 그녀들이 추천한 매장들이 있는 거리를 걸으며 혹시나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두근댔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그녀들의 멋짐에 반하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더 큰 꿈을 꾸고 더 큰 무대를 품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였을 것이다. 시차적응과 1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의 불편을 호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직은 대도시에 긴장하면서도 설레고 유명한 곳이 왜 유명한지 직접 나의 시선으로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열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고작 이 정도 직장생활에 번아웃과 매너리즘 증세를 셀프 진단했던 내가 뉴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새롭게 딛는 한 발 한 발에 뉴욕의 공기를, 바람을, 시간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