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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Oct 14. 2024

다시 10월, 뉴욕

Chapter 1.  HOTEL 


Intro 


 두 명의 직장인을 위한 휴가 일정은 일찌감치 잡아두었다. 부러움을 살 계절에 두 번의 휴일을 걸쳐 그리 오래가는 건 아니라는 소심한 항변을 내포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내릴 줄 모르는 환율 눈치를 보며 우린 D-7일까지도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유럽치고 물가가 저렴한 곳을 좇아 이탈리아에서 조지아로 눈을 돌렸지만, 그곳이 정말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는 곳일까?라는 의구심이 남았다. 몇 년째 영국 영어를 배우고 있는 그를 생각하면 역시 런던이다 싶었지만 첫자리 수가 2로 시작하는 비행기 요금이 자꾸만 망설여졌다. 어차피 경비를 낮추긴 늦은 이 시점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무엇일까, 한 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곳이 있나 생각해 보니 둘 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국이 떠올랐다. 

 "뉴욕 어때?" 

스카이스캐너로 돌려본 왕복 티켓은 1로 시작했고 그다음 숫자도 예상보다 낮았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한 것 아닌가? 그는 말했다. 시큰둥하던 내 눈이 그제야 갑자기 반짝였다고. 약간의 인터뷰가 동반되는 입국 심사, 식사마다 따져봐야 할 Tip, 조심스러운 물가와 치안, 혹시 모를 인종차별을 염려하며 패키지가 돼버린 걱정들을 핑계로 언제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 그곳은 왜 별안간 나를 사로잡았을까.  


 팀을 옮기고 싶던 선임에서 공석이 된 팀장의 자리로 옮긴 지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이동의 이유를 증명해 보려 Bottom up을 노렸던 기획안은 Approach에 동의할 수 없다는 되찬 공격을 받고 숨어버렸다. 억지웃음으로 받아낸 또 한 번의 기회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아서 맞춰보라는 Top down에 가까웠다. 수수께끼 같은 단서는 'Ace Hotel Lobby'였다. 아시아 유일의 지점인 교토를 올해 2월 찾았지만 1박의 경험은 남았을지언정 Lobby의 특수함은 명확히 인지되지 않았다. 이미 10여 년 전에 출간된 매거진 B의 Ace Hotel을 정독하고, 포틀랜드와 쇼디치 같은 클로징 된 점포들을 지우고 나니, 2009년 오픈 이후 지금까지 이슈성을 유지하고 있는 뉴욕 지점이야말로 Ace Hotel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란 기대가 들었다. 내친김에 가장 최근 2021년에 오픈한 브루클린 지점까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같은 해에 리뉴얼 오픈하여 힙플레이스에 등극했다는 맨해튼 East Side의 Public Hotel까지 3개 호텔의 가장 저렴한 1박들을 먼저 예약했다. 그리고 남은 일정들은 관광명소 입지의 가성비 호텔들을 찾았다. 총 6박의 뉴욕 일정에 5개 호텔을 이동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경비적으로도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는 겪어보고서야 깨달았지만. 결과적으로 2인 기준 뉴욕행 비행기 요금과 6박의 숙박비는 거의 유사했다.         



ACE HOTEL (New York, Brooklyn) 


 1999년 시애틀의 28 개실 뿐인 사회복귀자 보호시설을 리노베이션 하면서 탄생한 Ace hotel은 미국 4개점, 그리스와 호주, 캐나다, 일본의 각 1개점을 포함한 총 8개점을 운영 중이다. 문화적 의미는 있지만 잊혀 버린 거리와 빌딩을 찾아 각기 다른 콘셉트의 Collection 구성을 추구하는 이곳은 지금은 폐점된 2호점 포틀랜드에서 로컬 피플을 불러 모은 Lobby로 반향을 일으켰다. 부동산일 수밖에 없는 호텔이 투숙객만 기다리는 1차원의 공간이길 거부하고, 보다 근거리의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들릴 수 있는 라이브러리이자 카페, 공공의 거실과 파티룸으로 변신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2차원 이상의 진화를 이룬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이 같은 파격을 기획하고 실행한 이는 호텔업의 경력 없이 패션, 이벤트 프로모터, 음반, 바버샵을 거치며 컬처 인플루언서이자 크리에이터로 거듭난 '알렉스 콜더우드'였다. 그 지역만의 유니크한 세련됨으로써의 '로컬다움'이 차별화된 여행의 목적이 될 것임을 예측하고, 그 로컬다움을 창작해 내는 아티스트들과 그들을 가장 먼저 팔로우하는 감각적인 쿨키드들을 품는 공간으로서의 호텔이란 신상품을 구현한 압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이른 죽음 이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힙한 호텔의 대명사로서 이 브랜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도어맨도 없이 대마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든 이 거대도시에서 부랑자들이 아닌 힙스터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일정의 네 번째 밤을 뉴욕에서, 다섯 번째 밤을 브루클린에서 보내고 나니 교토의 경험과 비교되는 차이점과 공통점이 보였다. 생경험을 통해 도출해 본 Ace hotel에 가면 로컬과 여행하는 힙스터가 보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다. 첫째, 메인의 Avenue가 아닌 이면의 Street에 입지 하며 가장 가시성이 높은 저층부 대면의 상당 부분을 카페, 다이닝 등 F&B 테넌트에게 주로 할애한 뒤 호텔은 좁고 작은 정문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내가 바로 에이스호텔임을 대형 사인물과 그래픽으로 광고하지 않고 정반대로, 감도는 높고 패션에 비해 심리적 장벽은 낮은 식음료 스토어들에 둘러싸여 다소곳이 그곳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의 국민 카페라 할 수 있는 스타벅스의 화장실에서 세면 하던 부랑자들을 그곳에선 마주할 수 없었다. 또한 리셉션에서 가까운 정문이 아니어도 카페와 다이닝을 통해 Lobby로 진입할 수 있는 동선이 3~4개가 더 있으니 이곳을 자주 찾는 로컬 피플들도 좀 더 편안히 아지트에서의 루틴을 즐길 수 있었다. 



둘째, Lobby 내부공간의 구조는 배려심 있고 운영은 풍성하다. 여느 호텔의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리셉션 직원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의도적으로 리셉션을 정문의 측면에 배치했고 그 주변엔 굿즈샵을 연계해 쇼핑 스폿으로 느껴지게끔 구성했다. 그 대신 정면에는 둥글게 모여 앉는 대열의 소파와 탁자, 일자형 라이브러리 테이블, 가장 안쪽의 Bar가 최소 10m 이상에 달하는 깊이감으로 쭉 이어진다. 24시간 낮은 조도의 조명과 여유로운 음악이 들려오는 이 다채로운 옵션의 Seating 공간은 식음료 주문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아침 7시부터 커피와 식사 메뉴를 챙기는 Bar와 조식당이 대기하고 있지만, 공간이 좁은 스텀프타운의 커피와 베이커리를 가져와 라이브러리 테이블에서 책을 보며 즐길 수도 있다. 무심한 듯 벽면을 채우고 있는 아트 wall과 함께 AIR (Artist in Residence)라는 생태계 시스템으로 일정 기간 아티스트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그의 창작물을 전시하고 공연하는 갤러리가 한편에 보인다. 주 1회 저녁 7~8시경엔 디제잉, 음악공연, 북토크 등의 문화 프로그램이 신청 인원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세계 최고의 인구 밀도로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이 메가시티에서 가성비 좋은 낮의 라이브러리이자 밤의 클럽으로 언제나 붐비는 Lobby가 된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관광 중심의 올드시티라는 입지적 차이 때문이었을까, 교토의 Lobby는 소규모로 마주 앉은 소파와 테이블을 구성했을 뿐, 실제로는 트렌디한 상업공간으로 입소문 난 '신풍관'의 연결통로 역할에 그쳐 이 Lobby 문화가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아쉬움이 떠올랐다.

 

셋째, 운영자들의 캐주얼하게 친절한 호스피탈리티와 그러한 마인드셋이 반영된 카피라이팅이다. 리셉션에서 만나는 직원들은 개성적인 의상과 꾸민 모습부터 그들 역시 또 하나의 로컬 힙스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레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누지만 그렇다고 잡담으로 이어지기보다, 응대를 필요로 하는 여행객들을 눈길로 빠르게 캐치하고 다가온다.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오가는 동선의 반복을 피하려고 체크아웃 후 캐리어를 하루 정도 맡길 부탁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루는 물론 일주일까지도 Why not이라는 여유로운 대응에 좀 더 가벼운 걸음으로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Lobby를 떠나 엘리베이터, 복도를 지나 객실 내부로 이어지는 곳곳에 시선을 잡는 사인물과 문구들도 의례적이지 않았다. 정문에 적힌 'Every thing will be alright', 객실 인테리어로 쓰인 커튼의 'Every guess is right, show for something',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Love is meant to make us glad', 휴지통을 감싼 'Just trash, no treasure'까지. 그 지역만의 색깔과 Ace의 감각으로 선별한다는 객실 내 콘텐츠 큐레이션은 교토가 나았다. LP 몇 장과 턴테이블, 매거진과 책자가 그리고 물이 있었는데 뉴욕과 브루클린에서 그런 요소는 많이 생략되어 있었다. 마실 물조차 객실 복도 내 Tap water로 제공하고 있었다.    



Public Hotel  (Low East Side) 


 뉴욕에 도착해서 첫 1박을 했던 곳이다. 시차적응의 시험대에 올라 호캉스를 다짐했던 그날, 그라피티 섞인 도심과 단절되어 갑자기 동남아 리조트에 들어선 듯한 그리너리 한 호텔 입구가 사진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약 10m에 못 미칠 캣워크 구간의 좌우는 그늘이 드리워진 아담한 정원이었는데 일종의 시민공원으로 별도의 제재 없이 개방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서니 정면엔 역삼 센터필드를 연상시키는 오렌지브라운 컬러의 네온 빛 에스칼레이터가 시선을 압도했고 좌측엔 셀프 체크인 데스크로 구성된 리셉션이 보였다.


  한 명의 직원이 대기하고 있어 점심 무렵 도착한 호텔에 얼리 체크인을 할 수 있었는데 이미 그 시간에도 1층의 로비 역할을 하는 Bar에서 어울리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 레스토랑과 그로서리 주스샵을 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밝고 Up 된 분위기의 호텔이었는데 암막커튼을 치고 잠드니 4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맨해튼에서 지금 가장 핫한 동네 중 하나라는 주변을 걷고 재즈 공연까지 보고 돌아오니 이미 자정 무렵. 그 시간의 호텔은 유명하다는 18층 루프탑을 필두로 1층, 2층 곳곳의 라운지와 Bar를 채운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쉼을 위한 호텔보다는 분명 화려한 밤을 즐기기 위한 파티 공간으로 각광받는 곳이었다. 잠시 웨이팅을 하고 올라간 루프탑의 야경은 과연 아름다웠지만 이미 만석에 스탠딩으로 즐길만한 체력이 아니어서 바로 내려왔다. 조금 더 조용히 릴랙스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지만 1층은 클로징하고, 음악소리가 큰 2층만 남아 방으로 돌아왔다. 낮잠을 잔 탓이기도 하겠지만 호텔의 방음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새벽 3~4시경에도 흥에 젖은 목소리들이 복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백미는 그다음 아침이었다. 한국에서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모닝 Wellness 프로그램으로 7:30부터 한 시간 진행되는 필라테스를 30달러에 신청했다. 체크인 시 직원에게 1명 더 추가로 신청이 가능한지 물어보니 무료로 같이 참여하면 된다고 했다. 투숙객을 중심으로 스트레칭하는 클래스이겠거니 하고 들어갔지만 12명 정도의 늘씬한 2030 여성들이 참석한 금요일 아침 클래스는 대부분 지속적으로 수강하고 있는 로컬 피플들 같았다. 17층의 프라이빗 이벤트 스페이스 공간을 활용한 클래스는 어제의 야경 뷰 못지않게 고층의 탁 트인 경치를 즐길 수 있어 산뜻했지만, 뜻밖에도 클래스는 각자의 매트 위에서 다리와 손에 밴딩을 두르고 빠른 템포로 전신을 움직이는 고강도 프로그램이었다. 빠르게 환복하고 바로 출근길로 향하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Public hotel 역시 Ace 못지않게 운동과 소셜라이징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로컬 핫 피플들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포지셔닝으로 특화된 곳임을, 그렇기에 쉼을 원하는 여행객에겐 다소 버거운 콘셉트임을 깨달았다.     



POD (Times square), YMCA (West Side, Central Park)

 

 뉴욕이 처음이라면 Must go place인 명소에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지의 가성비 호텔이다. POD는 5분 남짓한 거리의 버스 터미널을 통해 우드버리 아웃렛을 다녀오는데 아주 좋은 위치였다. 반드시 상층의 로비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구조가 번거롭긴 했지만 그만큼 치안을 고려하는 이점이 있었다. 명소와 터미널에 가까운 만큼 거리의 부랑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마지막 1박을 했던 YMCA는 유서 깊은 건물에 입지 한 호스텔로 공용 욕실이 기본인 곳이다. 추가 비용 없이 20만 원 정도로 기간 중 최저 금액이었지만 매뉴얼화된 행정처리와 운영 시스템으로 단체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중장년층들도 여행을 위해 꽤 많이 이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욕실 이용 시간만 잘 선점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기에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Outro 

 

 다수의 사진으로 남은 뉴욕의 대표적인 인상은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커튼월을 두른 수직 건물들의 향연이다. 모든 게 집중된 물가 높은 이 도시의 생존법은 단위면적당 레이어를 높이고 활용 목적을 다원화하는 것이다. 그 생존 방식에 따라 부티크 호텔들도 타지의 여행객만이 아닌 세련된 로컬 피플들의 일상을 잡으려 저마다의 포지셔닝을 전략적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오히려 궁극의 목적인 객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공간의 바이브를 형성하고 생동감을 불어 일으키는 정제된 로컬 피플들이 1차적인 코어 타깃이 되어야 했다. 타깃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Ace, Public 호텔은 객실 외에 불필요한 어메니티를 최소화하고, Wellness, Party, Gallery, Library 등 쿨키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과 콘텐츠를 확대 구성하며 Hotel이라는 Stay 중심의 공간을 일상의 다용도화된 효율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경험의 밀도가 높은 복합문화적 일상을 지닌 로컬 피플, 요즘 시대 뉴요커들의 플레이그라운드가 된 뉴욕의 호텔들은 이 도시를 스쳐 지나가는 비일상의 여행객에게도 감도 높은 풍경을 안겨주고 있었다. 조금은 힘에 부쳤던 정신없는 호텔 여행은 지금의 뉴요커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바라보고, 맛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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