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10.19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세 가지를 바꾸라고 어느 책에서 말했다. 습관, 공간 그리고 사람. 새벽을 사수하던 나름의 루틴은 무너지고 나를 시험에 들게 하던 사람들과 멀어졌음에도 나는 여전히 지금이 아닌 다름을 갈망했나 보다. 잠시나마 머무는 공간을 바꿔보려는 무던한 시도가 2024년 내 여행의 궤적을 이렇게도 다채롭게 만들었을까. 뉴욕에 도착해서 일주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주일. 꼬박 2번의 일주일이 시차적응에 쓰였다. 이제야 겨우 한국의 시계로 내 몸이 맞춰져 가던 그때, 여수가 등장했다. 내가 손수 기획한 지난 여행들은 압도적으로 해외 여행지가 많았다. 초반엔 엄마의 오랜 소원 성취를 핑계 삼아 유럽 원정을 떠나는 게 효도라며 구글맵을 여는 걸 당연시했다. 주말을 껴서 2~3일 다녀올 때는 도쿄나 상하이, 홍콩 또는 방콕을 떠올렸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연차를 붙여 장기 휴가를 떠날 때는 유럽의 서쪽과 동쪽을 기웃거렸다. 국내를 배제했다기 보단, 후보선상에 아예 두지를 못할 만큼 사실은 무지했다. 대부분 가족들의, 이따금 친구들의 기획에 휩쓸려 동행하는 처지였고 출장으로 갔던 KTX 역사 주변을 근거로 그 도시를 아는 척했던 것 같다.
여수 밤바다. 그 유명한 노래 하나로 그 고장이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지도 벌써 오래였다. 함께 뉴욕을 다녀온 그의 일정이 그곳에 있었고 미리 예매해 둔 티켓까지 있어, 다시 한번 남이 차려놓은 기획에 편승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운동도 거의 못해 바닥 한 내 체력이 다시 한번 이동의 일정을 버텨줄 것인가였다. 택시를 타거나 차를 렌트해도 나는 조수석에 탈뿐인데 그걸 못할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금요일 퇴근 후 용산으로 향했다. 한껏 붐비는 게 당연한 전철에서 벗어나 음료수를 챙겨 마침내 착석한 열차에서 기절하다시피 잠들고 나니 어느덧 종착역 여수였다. 시류에 영합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풋풋한 20대 시절 본인의 초기작 속 무대 '여수'를 탐방하는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지만, 여전히 내게 여수는 KTX역 바로 한 정거장 차이의 '여천'의 이웃 도시였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서 돌아와 침대 위에 누인 갓난아기, 둘째 동생을 만났던 그 도시. 언덕진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가면 황량하게 펼쳐진 공터의 돌무더기가 보이고, 그 돌멩이들만으로도 해가 지도록 놀았던 짭짤한 바람이 코 끝을 맴도는 동네. 모두가 같은 노란색 모자를 쓴 채로 스쿨버스를 탔고, 작은 동물원 같은 사육장까지 품어 성처럼 거대했던 내 인생의 첫 학교. 그랬던 여천을 더 많은 사람들에겐 '여수 옆 동네'로 설명해야 안다는 건 커가며 당연하게 마주했던 사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심 씁쓸함을 느껴서일까. 유난히 멀게 느껴졌던 여수는 3시간이면 닿는 곳이었다.
이상하게도 더 무거워진 것 같은 배낭을 짊어지고 역을 나오니 피곤에 휩싸였다. 그러나 1박 2일의 짧은 일정에 이대로 호텔을 가버리면 '여수 밤바다'는 내겐 다시없을 것 같았다. 먼저 도착했던 그를 만나 택시를 타고 낭만 포차의 거리로 향했다. 밤 12시를 향해가는 시간, 가게들이 슬슬 문을 닫는 분위기라 아직 영업하는 포차 쪽으로 메뉴 고민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았다. 시선을 압도하는 빨간 '하멜등대'와 한데 모여 잠든 배들, 화려한 불빛으로 수 놓인 다리와 일렁이는 그림자 같은 바다. 이것이 노래로만 듣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밤바다 뷰에 취해 신중하지 못했던 메뉴 선택은 곰장어와 장어는 매우 다르다는 걸 알려주었고, 기분 탓인지 메슥거리는 속을 붙들고 호텔로 들어갔다. 그 밤부터 내 몸은 뜨거워졌고 몸살 기운으로 으슬거렸다. 그가 사 온 타이레놀과 쌍화탕의 조합도 내 이상증세를 바로 잠재우진 못했다.
이튿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조금은 개운한 느낌이 들었지만 멍해지고 추위를 느끼는 건 아직 그대로였다. 지난밤 왜 이렇게 먼 곳에 위치했을까 의아했던 호텔의 아침 뷰는 망망대해에 뜬 배 같은 모습이었다. 저 멀리 벌써 깊은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배들과 안개에 숨겨진 섬들이 산처럼 이어졌고, 아직 고요한 푸른 물결은 중천에 오른 햇살을 거울처럼 비추며 한 줄기 황금빛 물길을 너울거렸다. 환상 같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허기를 느끼고 탁자에 놓인 마카롱과 타르트와 떡을 마구 씹어 삼키며 호텔을 나섰다.
이리하여 실질적인 본여행의 시작은 굽이굽이 산을 넘어 전복죽집을 찾아 나서는 드라이브였다. 그 여정에 불쑥 고개를 내민 갈치집이 유혹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소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전복죽이 너무나 간절했다. 쾌창한 창 밖의 하늘과 옅은 에메랄드 빛 바다의 풍경과 달리 내 기운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방전이 되어가던 찰나, 마침내 도착한 어느 작은 마을의 유일해 보이는 가든 스타일의 식당은 다복한 고양이 가족들이 잔디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전복, 소라, 해삼, 멍게, 조금의 회와 게찜까지 신선한 국내산 해산물들이 애피타이저로 먼저 등장하는 전복죽 코스는 성대했다. 만찬을 즐기고 고즈넉한 카페의 핸드드립을 마시고 나른하게 잠들다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전복죽의 힘인지 조금씩 기운이 올라왔고 해상 케이블카와 오동도, 마지막 갈치조림까지 일정 목표를 완수했다. 한번 더 쌍화탕을 먹고 기진맥진하며 상경하고는 꼬박 일요일 하루를 빈둥거리며 다시 정상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수는 과연 아름다웠고 관광지 외에도 보석 같은 장소들이 숨겨져 있으며 산해진미를 자랑하는 곳이었으나, 그날의 나는 아팠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장소도, 날씨도 아닌 나의 컨디션임을 새삼 깨달았다. 더 많은 경험과 풍경과 이동의 희열을 이젠 잠시 멈출 때라는 걸 낯설었던 여수는 내게 알려주었다. 짧고 긴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 이건 결국 현기증 나는 현실의 외면이고 탈피였을까. 그래서 정녕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나는 과연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을까. 아직 그 모든 시간이 결과로 수렴되지 않은 소화의 과정 중이라 믿고 싶다. 다시 원점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이 다가왔음을 여수의 바다는 내게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