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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Jul 03. 2022

타인의 욕망에서 나의 욕망으로

스가쓰케 마사노부 <물욕 없는 세계>를 읽고

 지난 몇 달간 책장 속에서 기다려 준, 이 책을 통해 익숙하지만 모호했던 여러 추상적 단어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2015년 무렵이었을까, '라이프스타일'은 직장 내 금기어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함부로 남용하는 발칙한 작태에 얼굴이 자주 울그락불그락 하던 임원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결국 라이프스타일은 당당히 하나의 장르로 상품의 세계에 진입했고, '컨템포러리'라는 동생이 뒤를 이었다. 그저 키워드로 남을 뻔했던 단어들의 의미를 한번 더 정리해보고 마음에 담는다.


라이프스타일 : 일상에서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여유 있는 삶의 태도

(여유 = 예쁜 쓰레기? 아름다운 여분?)

킨포크 : 정갈하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게 하는 타이머

포틀랜드 : 독립적 삶의 표본이자 크리에이션의 전쟁터

소비는 투표다


 '잇템'을 지나 '찐템'의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너무 많다는 피로감, 스마트하기 위해 태워져야 하는 시간과 무수한 검색, 드로우와 오픈런까지 이제 감정마저 요구하는 노동으로서의 소비에 질렸다. 오히려 길을 걷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 모를 샵에서 충동적으로 발견해내는 원초적이고 바보 같은 소비에 끌렸다. 고민할 게 너무 많은 세상에서 물건에 대한 필요와 욕망을 분간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는데 시간을 저당 잡히며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고 싶은 건 적당히 사버리는 단순 무식한 소비를 통해 내가 소유하고자 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건져지는 일상의 '틈'을 통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만 유투버 '미니멀 유목민'의 지독히도 구체적인 실행 강령을 보고 들으면서도 미니멀리즘은 여전히 동경의 영역에 산다.


 아직 나의 미궁 속에 빠져있는 '미니멀리즘' 정의는 뭘까. 지속 가능한 종목별  하나의 궁극적 아이템? 이른바 끝판왕이란 소비의 종착지? 글을 써보자니 가만히 있던 키보드가 거슬렸고 옆에 있던 친구는 눈에 좋다는 스탠드를 알려준다. 그새 알고리즘은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쓴다는 의자와  밑에 두면 최고인  받침대를 소개했다. 이것은 소비가 아닌 건강 보험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욕망에 충실하려는 찰나, AI 달려든다. 압도적인 수로 데이터화  타인인지 나인지 모를 욕망을 믿으라고. 어차피 1 가구라  하나만  것들이었는데, 카테고리별 피라미드 최상단의 그걸 바라라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욕망에 휘둘려 사용년수에 무감각해진, 미니멀리즘을 빙자한 과소비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AI 제거당한 알고리즘 바깥의, 오로지  감각과 욕망에 충실한 우연적 세계로 과감히 탈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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