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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Jul 03. 2022

일상의 기원을 찾아서

로먼 마스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를 읽고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 아직도 이 두 글자에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는 이유는 무얼까. 매일을 내딛고 있지만 실상 그 본질에 닿지 못한 듯한 정체 모를 향수의 감각을 느낀다. 아는 것 같은데 모르는 것 같아 그 뜻을 검색해보니 휴대폰은 말한다. '촌락과 더불어 인간의 2대 거주형태이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라고. 너무나 간명한 AI적인 답변에 대한 허탈함을 이 책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느꼈다. 도시 전반에 대한

흐름과 맥락과 체계를 알려주길 제멋대로 기대한 내게, 책은 말하는 것 같았다. 도처에 살아 숨 쉬는 일상의 기원들을 탐색해보길, 그들을 탄생시킨 아이디어들을 발췌하며 도시라는 퍼즐을 스스로 맞춰보길, 좀 더 능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라고 말이다.


책이 알려준 퍼즐들

-하수시스템 초기의 일본, 가메다 야스타케라는 건설성 고위직 공무원은 지역 주민들이 필수적인 지하시설을 잘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눈에 띄도록, 맨홀 뚜껑을 예술적 표현의 장소로 승화시켰다 (p.154)

-우체국은 있고 배달부는 없었다. 나쁜 소식을 사적 공간에서 들을 권리의 탄생과 함께 배달부는 존재했다 (p.150)

-필라델피아 고택의 별 모양 장식은 사실 장식이 아니다. 가장자리만 연결된 정면과 후면의 벽이 중간에 휘어짐을 방지하는 동시에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도형 고정판이다 (p,58)

-엄연히 필요한 것을 혐오한다. 존재하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유정탑과 하수로 가스관과 지하철 배기구와 비상구, 통신 중계탑은 오벨리스크로, 소나무로, 창문 없는 주택으로 3차원의 트롱프뢰유가 되었다 (p.42)

-도로표지판, 가로등, 전기선 등이 달린 기둥은 튼튼함과 동시에 비상시 즉각 부러질 것을 요구받는다. 인명피해 최소화란 대의를 위해 극단적 생존 법칙에 놓인 사물들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p.31)


그래서 전이되는 기쁨

종로에 사는 즐거움 하나. 지독히 단순하게도 '종'의 형상을 띤 2차원 마스코트와의 우연인 듯 우연 아닌 만남이다. 보행로 중간 작은 화단의 석재에도, 전봇대 마감재에도 호기롭고 뜬금없는 등장이 반갑다.

즐거움 둘,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닐 수 없는 '터'들의 발견. 매일 건너는 창덕궁 맞은편 신호등 앞 비변사 터, 운현궁 너머 초등학생들의 등굣길 자락에 지석영 집 터. 인사동 골목길 너머 빌딩 숲 초입에서 만나는 민영환 자결터. 이제는 개수가 얼추 헤아려지는 것 같은데, 버스 안에서 무심코 던진 시선에 미처 못 보던 또 다른 '터'가 있다. 즐거움 셋, 퍼즐의 이식. 오늘은 출근길에 맨홀 뚜껑을 유심히 찾았다. 집중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대체로 깔끔한 신식 보도블록의 자재와 색상 패턴에 깔맞춤 하여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문득 몇 년 전 걸었던 하코다테 주택가의 앙증맞은 각기 다른 명패들이 떠올랐다. 작은 존재들의 인정과 거리낌 없는 노출. 그래도 너무 드러나는 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자연스레 드는 것이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채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종로는 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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