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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Jul 29. 2022

두근거림을 발견하고 그곳에 머무는 삶

오가타 다카히로 [비밀기지 만들기]를 읽고 

 지금은 사라진 도산공원의 한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눈을 의심케 한 재기 발랄한 기획과 구성, 가볍고 부드럽게 손에 감기는 촉감이 좋아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당시에는 기발함에 탄복하며 술술 책장을 넘겼다면, 이번엔 왜 하필 비밀기지인지 그 의미를 좀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짓궂은 어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문체였지만 이 책을 집어 들 사람들은 결코 어리지 않을 것임을 저자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밀기지'는 실존 너머의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다가왔다.


 데드 스페이스라 불리는 무쓸모의 '틈'을 발견하고, 일상의 재료와 상상력을 접목하고, 한바탕 놀이를 벌이거나 그저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공간, 비밀기지가 탄생된다. 저마다의 필요와 철학에 따라 각양각색의 형태로 구현된 비밀기지들은 그러나 분명한 공통의 특징을 지닌다. 숨는다는 행위를 통한 임시적 자발적 격리. 다소 음침하고 비좁을 지라도 기어코 속하고 싶은 공간이 주는 위로는 뭘까.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없다는 것. 마음껏 울거나 웃거나 그대로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것. 자신에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조금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아닌, 해리포터의 구조버스를 바라던 발걸음 무거운 날들이 이따금 있었다.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 집이라지만, 혼자가 아닌 집은 또 하나의 사회이니까. 그래서일까. 무수한 카페와 상점에 퍼져나간 재생건축, 업사이클링의 여전한 인기는. 폐허가 연출하는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잠시 숨고 싶었던 게 아닌지.


 일본기지학회의 설문조사를 통해 짧은 글과 일러스트로 복원된 비밀기지의 추억들이 부러웠다. 작정하지 않았지만 나도 몰래 만들고 즐겼던 비밀기지는 무엇이었을까. 부모님이 외출한 어느 날의 빈집. 동생과 둘이 엄마의 화장대와 옷장을 뒤졌다. 립스틱을 발라보고 하이힐을 신어보고 귀걸이를 뽐내며 어른이 되보던 시간. 끝나지 않을 듯한 하루를 김밥으로 마무리하던 신입시절의 계단실. 지금도 좋아하는 빈 놀이터의 그네. 지면을 탈출한 발이 허공을 가르는 그 비일상적 시간과 바람의 냄새.


 '스스로 책임지고 자유롭게 논다'는 모토의 플레이파크(모험 놀이터)를 가보고 싶어졌다. 조금 다쳐도, 위험해도 괜찮으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직접 만들라는 낯선 용기의 제안에 두근거렸다. 관념을 넘어선 행동을 촉구하는 상상력과 추진력. 비밀기지가 곧 삶이 된 이들을 통해 주거와 소유, 위험이 제거된 미래 인류까지 꽤나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아직 보지 못한 영화 '노매드랜드'를 조만간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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