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가는대로 Aug 02. 2024

연중 제18주일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 중에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는 나름 신념이 있고, 저만의 삶의 기준을 잘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정말 제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중요한 것을 제가 쫓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 같은 일들이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제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옳고 그름으로 판정하고 있는 제 모습을 알아차리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에 어느 광고회사 사장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회사에서는 가족이 가장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회의 중이라도 가족에게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아야 하고, 어느 약속보다도 가족과의 약속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니, 회의 중에 받는 전화는 가족에게 오는 전화가 아니라, 회사의 높은 사람에게 오는 전화였습니다. 가족에게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모두가 이해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사에게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회의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불려 가느라 회의가 의도치 않게 끝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말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회의가 더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경우도 있었으나, 순간적인 상사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다른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의 중요성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상사의 반응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과 회의를 하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도 전화를 거의 하지 않던 아이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잠시 망설이다 나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순간에는 제가 관여할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니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잘 나누고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가니 그때까지 제가 필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 경험이 저를 가족들의 연락에 좀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었습니다. 잠깐은 회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편할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저를 더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만 보면 선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도 아마도 사실은 공동선이 무엇인지, 모두가 어디로 가야 함께 갈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동선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먼저 움직일 뿐일 겁니다. 작은 이익이라도 앞에 보이면 그 이익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에도 자신의 이익을 따라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충돌하면 자신의 이익을 택할 것 같습니다. 공동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알고 있지만, 저도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 요한 6,26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라는 것을, 예수님께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저는 표징이 아니라 빵을 좇는 유대인들의 모습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지만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는 당장 관심이 없고, 오늘 먹을 빵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표징은 방향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지금 눈앞에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방향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길이 고난을 준다면 오히려 고난을 향해 걸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빵은 그 순간 허기를 채우게 만들어줍니다. 표징이 아니라 빵을 따라가면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동안에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의미가 주어집니다. 다른 곳에서 빵을 준다고 하면 그 빵이 어디서 나온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아닌 빵을 따라갈 것 같습니다.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해야 할 것을 하기보다는 그 순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사탕 하나에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아이들과 다들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 할 것은 없습니다. 표징을 따라갈지 빵을 따라갈지는 제 몫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을 것인지,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릴 것인지도 제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매번 표징을 선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순간 제가 빵을 보고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항상 깨어있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