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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빌려 쓰는 마음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최도아 / 프리랜서


사방이 집으로 가득하지만 내 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서울에 살게 했다. 사랑하지만 사랑받을 수 없는 이 도시를 빌려 산 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이태원1동에서 약 3년을 살았다. 대학교 3학년 때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에 당첨되었는데, 7,000만 원이라는 한도 내에서 서울에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없었다. 서울 끄트머리나 재개발을 앞둔 낡은 주택을 뒤져야만 간혹 매물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흘러들어 간 곳이 이태원1동이었다.


집을 보러 이태원동과 보광동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곳곳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다. "점집 같죠? 재개발 반대 깃발이에요." 중개사분의 말처럼, 나는 재개발이라는 혼란의 틈을 타 서울로 들어왔다.


1980년에 지어진 빨간 벽돌집 2층, 차가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이었다. 아래 천막집에는 옷더미를 가득 쌓아 둔 노부부가, 옆집엔 히잡을 두른 5인 가족이 살았다. 겨울이면 방 한 면이 곰팡이로 새까매졌고, 수도관과 보일러, 세탁기가 돌아가며 얼어붙었다. 여름엔 카페로 피신해야 할 만큼 더웠다. 3개월 만에 수도관이 터지고 매 계절 난리가 났지만, 나는 불편해도 익숙한 척 살았다. 어릴 때 살던 집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 가득한 신도시, 예쁜 이름이 붙은 고층 아파트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경기도와 서울의 저렴한 동네를 전전하며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내가 살던 동네는 늘 복잡하고 북적거렸으며, 국적을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뒤섞여 있었다. 친구들의 부모님은 동네 횟집, 빵집, 치킨집 사장님이었고 덕분에 생일 파티는 늘 풍족했다. 언니 오빠들은 배달 오토바이를 몰았고, 우리는 불량 식품을 입에 물고 놀이터에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부모님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나를 서울의 대학으로 보낸 뒤에야 깨달았다. 저들과 나는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았구나. 깔끔한 집, 단정한 옷, 안정적인 월급, 주기적인 가족 여행. 그런 환경에서 자라 부모님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삶. 만약 나도 그렇게 살았다면, 내가 살아온 동네를 보며 "이곳은 특이하고 이상해요"라고 말했을까.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다


2021년, 예술 프로젝트 <한남제3구역>에 참여하게 된 건 필연 같았다. 마침 옆 동네인 이태원1동에서의 거주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음악과 기록용 사진을 맡았다. 보광동에 사는 배우 출신 연출가님과 함께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연극을 만들었다. 3대째 사는 토박이부터 이주민, 그리고 점점 사라져 가는 아이들까지. 우리는 동네의 오래된 가게에서 공연하고, 전시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주 기한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1년을 보냈다.


그중 10월에 진행된 <Deleted>는 이주를 코앞에 둔 시점의 공연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떠나 동네는 꽤 우중충했고, 폐기물과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발에 차이도록 나뒹굴었다. 누군가는 공연이 감성에 치우쳤다고 했지만, 수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해진 마음을 굳이 논리적으로 헤집고 싶지 않았다. 그저 모든 이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었다.



빌려 산 지 3년 차


프로젝트 도중 만난 20대 분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곳의 '특이한 기운' 때문에 이사 왔다고 했다. "이상한 노인들도 많고 무당도 많은 게 저는 안 이상해요. 구불구불하고 복잡해서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아 신기해요."


편집본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특이하고 이상한 곳에 살았나? 남들이 보기에 곰팡이가 피고 수도가 터지는 그 집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곳'이었을까.


19살의 12월 31일, 정신없이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스무 살의 1월 1일이 되어 있었다. 그때 느꼈던 허한 감정은 여전하다. 낭만이 풍족함에서 나오는 거라면 내게 낭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서울은 부모님의 뒷배 없이는 몇십 년을 숨만 쉬고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 버거운 곳이니까.


2022년에는 청년 주택에 당첨되어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반짝이는 번호키가 있는 집에 살게 되었다. 2025년 10월 현재, 서울을 빌려 산 지 어느덧 3년 차. 나는 여전히 사랑해도 사랑받을 수 없는 이 도시에서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를 묻는다.


넘볼 수 없는 세상에 좌절하면서도, 결국 위로가 되는 건 사람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찰자가 되기로 한다. 내가 살던 동네,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곳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곳에 무엇이 있었냐"라고 물을 때, 좋은 추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이 도시를 잠시 빌려 쓰는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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