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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그릇, 안에 담긴 삶의 밀도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문지훈 /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


도시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눈 대가로, 우리는 거리의 온기를 잃어버렸다.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그릇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건물과 도로, 광장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릇의 단단한 껍질이라면, ‘기능적 밀도(Functional Density)’는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 즉 우리의 삶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빚은 그릇이라도 담긴 음식이 부실하면 식사가 즐겁지 않듯, 도시 공간의 가치 역시 그곳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향유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릇의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에 시선을 뺏겨, 정작 그 안에서 어떤 삶이 끓어오르고 있는지 놓치곤 합니다.


공간의 쓰임새를 정하는 방식에는 그 시대 도시가 품은 고민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매연과 소음으로 뒤범벅된 산업화 시대의 도시인들은 혼잡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꿨습니다. “잠은 조용하고 쾌적한 곳에서, 일은 효율적인 곳에서.” 이 명쾌한 논리는 주거, 업무, 공업 지역을 마치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용도 분리(Zoning)’의 문법을 탄생시켰습니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무질서와 비위생이라는 도시의 질병을 도려내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쾌적한 아파트 단지와 거대한 오피스 타운을 얻었습니다. 기능적으로 순수하게 정제된 공간은 관리하기 쉽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온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반듯하게 정돈된 신도시는 깔끔하지만, 어쩐지 밋밋하고 차가운 인상을 줍니다. 낮에는 텅 빈 주거지, 밤이면 적막에 잠기는 업무지구. 기능의 분리는 공간의 효율을 높였을지 몰라도, 삶의 시간을 파편화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활력의 불씨를 꺼뜨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곳


반면, 우리가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오래된 도심의 골목을 떠올려 볼까요? 1층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과 음악, 2층 디자인 사무실의 분주한 타자 소리, 그리고 그 위층 가정집의 평온함이 마치 시루떡처럼 한 건물 안에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예찬했던 이 ‘용도 혼합(Mixed-use)’의 풍경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놓습니다. 빵을 사러 나왔다가 이웃과 눈인사를 나누고, 퇴근길에 우연히 동네 서점에 들르는 사소한 마주침들이 일상을 다채로운 색깔로 채웁니다. 도시의 기능들이 오밀조밀하게 포개질 때, 도시는 단순한 생존의 터전을 넘어 풍요로운 경험의 장으로 변모합니다.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이러한 혼합의 가치를 ‘열린 도시(Open C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기능이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섞일 때,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마주칠 기회를 얻습니다. 직장인과 주민이, 예술가와 상인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질 때 사회적 복잡성은 짙어지고, 이는 도시가 가진 포용력과 창의성의 원천이 됩니다. 서로 다른 기능이 부딪히고 스파크가 튀는 그 경계선에서 도시의 새로운 문화가 싹트기 때문입니다.


물론 ‘섞임’만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뒤섞인 고밀도 복합 공간은 활기차지만, 때로는 감각적인 피로를 줍니다. 소음과 빛 공해, 옅어지는 프라이버시는 혼합이 드리우는 필연적인 그림자입니다. 때로는 철저히 분리된 전원주택지의 고요함이 깊은 휴식을 주고, 생산에만 몰입할 수 있는 격리된 연구 단지의 긴장감이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도시는 활력과 휴식, 개방과 은둔, 혼합과 분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도시가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기능들을 지나치게 격리해 온 나머지 삶의 연속성마저 끊어놓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집에서 일터로, 일터에서 여가 공간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하여, 정작 공간을 음미할 여유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요? 최근 주목받는 ‘N분 도시’ 같은 개념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잃어버린 기능적 혼합을 복원해 삶의 동선을 다시 ‘인간의 보폭’에 맞추려는 시도입니다.


도시의 실제 쓰임새는 계획가의 의도와 시민의 욕망이 엇갈리며 완성됩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통찰처럼, 지도 위에 그려진 차가운 ‘구상된 공간’은 시민들의 체온이 녹아든 ‘체험된 공간’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쇠락한 공장 지대가 예술가들의 힙한 아지트로 변신하거나, 널찍한 대로변보다 비좁은 뒷골목 상권이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현상이 이를 증명합니다. 도시의 기능은 책상 위 도면이나 법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과 욕망, 그리고 매일의 실천을 통해 비로소 숨을 쉽니다.


결국 도시의 기능적 밀도를 읽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의 간판을 확인하는 일을 넘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중첩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어떤 동네는 밤이 되어야 깨어나고, 어떤 건물은 주중엔 전쟁터 같다가 주말이면 텅 빈 껍데기가 됩니다. 이처럼 공간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출렁입니다. 이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내 삶을 담아내기에 가장 알맞은 밀도의 그릇은 어떤 모양일지, 그리고 나는 그 그릇을 어떤 이야기로 채우고 싶은지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저자의 다른 글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unji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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