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심한 우울함과 무기력을 겪고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생각들은 점점 구체화되어 자살 충동으로 이어졌고, 자살충동으로 응급실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몸을 벌벌 떨며 집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은 했는데... 나만 사지 멀쩡하게 응급실에 들어간 게 너무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사이에 덩그러니 서있는 내 몰골이 조금 수치스러웠던 거 같기도 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자살충동이 심해서요.”
“네? 음... 한 번 알아볼게요”
간호사분이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셔서 대화를 잠깐 나누었는데 나를 위아래로 주욱 훑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왜 왔냐고 물어보시더라. 괜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다음엔 이런 일로 오면 급한 환자들은 어떡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속은 다 문드러졌는데 겉이 멀쩡하단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도 아프고 서러운데, 꼭 다리 부러지고 피가 나야만 아픈 걸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며 간호사님 뒤통수를 괜히 한 번 노려봤던 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저런 대화 끝에 응급실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있는데, 참 허무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냥 바로 죽었으면 되는데 죽을 거 같으니 살겠다고 응급실에 달려온 나 자신이 너무 웃겼다. 막상 죽으려니 무서웠나 보다. 생각보다 나는 더 삶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라는 느낌도 많이 들었던 거 같다.
응급실은 정말 많은 환자가 왔다 갔다 거리는 정신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거의 2-3 사간을 기다렸다. 잠에 취할 때 즈음 드디어 정신과에서 의사분이 내려오셔서 내 인적사항과 그 외 등등 많은 정보를 물어보셨다.
기억에 남는 질문을 골라보자면 자살시도를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해놓았는지? 그 질문이 제일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실제로 어떻게 죽을지 계속 고민하던 시기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상태를 다 들어보신 선생님 깨서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짠 이상 그냥 둘 수 없다 하시면서 정신과 입원을 권유하셨다. 입원 자리가 금방 나진 않더라도 어쨌든 최대한 안정적인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지내며 안정을 찾는 게 먼저라 하셔서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동의 입원으로 대기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바쁘신지 후다닥 나가신 선생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가신 줄 알았는데 바쁘셨던 건지 다시 오셔서 아티반주사를 맞혀주셨는데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 아티반정(알약으로 된 것)을 필요시 약으로 먹는데 이건 뭐 그냥 플라시보? 뭐 그런 효과였구나 생각했다. (나는 약효가 안 들었지만 분명 먹고 진정되는 사람도 있으니 맞는 약을 잘 먹고 투약하는 건 중요하다.)
병원에서 물끄러미 자해 흉터를 보다가 죽고자 하는 사람들 마음의 구석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 바엔 죽겠다는 선택을 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려나
자살 충동이 심하게 올라오면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들어가서 자살충동 때문에 왔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다. 대신 기다리는 동안 다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웃긴 단점이 ㅎㅎ,,,
우리나라가 조금 더 자살 충동에 대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너무 좋을 거 같다. 자살 충동이 들면 꼭 응급실에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