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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8. 2019

우아한 김여사네 변기 ❶

【철물점용 2천원짜리 초록 빗자루로】

철물점용 2천원짜리 초록 빗자루로



우리 집에는 남자가 없다. 남자 역할을 도맡아 하는 여자도 없다. 그렇다고 공주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주과는 아니지만 사모님과가 한 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분의 정체성은 워낙 모호해서 단정 짓기도 뭐하다. 


우리들은 매사에, 철저하게, 하나같이 매우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다. 독립심은 엄마가 길러준 것이고 개인주의는 타고난 본성이다. 방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못질이나 형광등 교체 등 손 볼 일이 있으면 그 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은 보통 엄마가 하지만 때에 따라 합의나 조정을 거쳐 결정되기도 한다. 부디 오해 없기를. 개인적이라 해서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아니니까. 우리는 단지 지금과 같은 세상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엄마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엄마는 나의 비아냥을 눈치챘는지 못 챘는지 은근히 그 호칭을 좋아한다. 가끔은 “김 씨!” 또는 “아줌마!”라고 소리 지르기도 한다.  주부로 산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분께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엄지와 검지로 코를 쥐어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콧부리에서 가장 멀리 가도록 빳빳이 세우는 행동을 할 때다. 정말이지 그런 손가락을 매일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기 힘들다.     


비위가 약해서, 라는 게 그분의 변명이다. 하지만 베란다 청소를 할 때마다 철물점에서 2천 원 주고 사온 초록색 거친 빗자루로 북북 박박 쓸어대는 모양이 하녀 같기도 하다. 그 하녀는 프릴이 달린 하얀 앞치마를 하고 있기는 하다. (하녀와 사모님은 똑같이 흰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녀는 베란다 물청소가 끝나면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부잣집 사모님의 실내복 같은 옷을. 북북 박박 바닥을 쓸어내리느라 콧잔등에까지 땀이 송글 송글 맺힌 사모님이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계속)



**8화까지 이어지는 연재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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