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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8. 2019

우아한 김여사네 변기 ❸

【엄마, 막혔다!】

엄마, 막혔다!


가끔 그녀가 진짜 부잣집 사모님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앞뒤 베란다 문을 다 열어놓고 식탁을 서재 책상인양 여기고 앉아서 커피한잔 옆에 두고 책을 읽을 때이다. 여사님은 그런 서재에 들어설 때 하얀 린넨 원피스를 입고 보라색 거실화를 신으며 머리를 틀어 올려 단정하게 핀을 꽂는다.     


엄마가 그런 포즈를 하고 있으면 햇빛이라곤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주방 식탁이 서재로 변하면서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든다. 그럴 땐 저것이 연기인지 아니면 여사님의 참모습인지 헷갈린다.     


확실한 건 그녀는 우아함을 생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로서는 약간 곤란한 일이 얼마 전에 생겼다. 동생 때문이었다. 동생은 평소 뭔가를 먹으면 30분 이내에 화장실로 달려간다. 어쩐지 그날따라 더 많이 먹는다 했다.     


그날도 동생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물살이 어딘가에 걸린 듯 켁켁거렸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동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막혔다. 


이런 것은 엄마 몫이다. 그런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엄마는 아무런 요동도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머그잔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우아함을 잃지 않는 엄마의 포즈에 나는 감탄했다. 


-어쩐지 많이 쳐묵드라. 


내가 말했다.


-어쩌라고.    


동생은 소리 지르며 제 방으로 문을 쾅하고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갔다. 


-변기 뚜껑 내리고, 환기해.


엄마였다. 그리고 다시 머그잔을 들었다. 동생이 소리 없이 기어 나와 욕실의 환기 스위치를 눌렀다.


-작작 먹어라 작작!


내가 동생 방문을 열고 소리 지르자 동생은 혀를 낼름 내밀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계속)



**8화까지 이어지는 연재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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