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동아리선배의 축가를 시작으로 숱하게 축가를 불렀다. 그룹으로도 불러보고, 듀엣으로도 부르다가, 어느 새부터 혼자 불렀다. 신랑이 원해서, 신부가 원해서, 혹은 신랑신부의 가족이 원해서 부른 축가들. 처음에는 떨렸고, 두 번째는 벅차다가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신랑신부의 새 출발에 축하의 마음을 보낼 수 있어 한없이 기쁘다가도, 결혼식의 설렘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축가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축가연습을 제대로 안 할 것도 아니고 결혼식을 망치지도 않을 것이며 엠알도 정성스레 편집해서 보낼 것이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한쪽에서는 이런 걱정도 생겼다.
'겹치는 지인들은 이제 질리지 않나?'
여기에 축가 부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미안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켕겼다. 결혼식은 당연히 신랑신부가 우선이니까 미안할게 전혀 없는데. 모든 것이 엉망진창 뒤엉켜 그 누구도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들어오는 축가를 마냥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무렵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N의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결혼식 당일, 축가를 그렇게나 불렀는데도 친한 친구의 축가는 처음이라 평소와는 달리 온몸이 떨렸다. 이것이 지나가면 다시는 축가를 받지 않으리. 제발 사랑하는 내 친구의 축가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세요. 혹여나의 실수로 인해 그녀의 결혼식에 흠집으로 남지 않도록 해주세요.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며 H는 본인 결혼식은 편하게 보고 가라는 위로를 건넸다. 자신의 결혼식을 데뷔 무대로 하고 싶은 아버지의 욕망을 들어드리기로 했다며.
- 너무 좋다. 그렇다면 신나는 마음으로 가서 사진을 많이 찍어줄게.
한 달 후, H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나... 축가 부탁해도 돼? 노래도 이미정 했어. 이소라의 청혼.
- 당연히 되지. 왜 망설였어.
- 아니 내가 너무 편하게 오라고 해놓고, 갑자기 부탁하니 민망해서?
축가 두 개하고 싶은데 네가 꼭 불러주면 좋겠어.
- 두 달 전이면 갑자기도 아닙니다 신부님!
못 불러줘서 아쉬울까 했는데 내 목으로 우리 친구들 다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
H의 결혼식 날이 왔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부르신 아버지와 그걸 따라 부르며 오열하는 신부덕에 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H의 얼굴을 보다 터진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내 순서가 왔다.
'큰일 났다.'
생각도 잠시 반주가 흘러나왔고 노래를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숙연한 분위기를 살려야 해. 사명감이 생겼다.
통통통. 약간의 몸짓을 곁들이며 노래를 했다. 다행히 신랑신부는 즐거워했고, 후련한 마음을 안고 무대를 내려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H는 울음이 그쳤다가 내가 울면서 올라오자 또 눈물이 터졌다고. 결혼식이 끝나고 H로부터 짤막한 편지를 받았다.
맞아 우리는 예전에 이런 약속을 했었지! 언젠가 네가 결혼을 하면 나는 내손을 잡아를 축가로 부르기로. 비록 이번 축가에는 아이유가 아닌 이소라로 갔지만, 그래도 너의 결혼을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축하해 줄 수 있어서 행복했어.
매너리즘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친구들을 축하하는 나만의 방식' 생각을 하니 축가 한 소절 한 소절이 더욱 소중해졌다. 앞으로 그녀들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의 열한 번째 축가가 끝났다.
혹시나 누군가가 나에게 열두 번째 축가를 부탁한다면 이 마음 그대로 담을 수 있기를.
축가 경력직(?)이지만 마음만은 첫 번째 축가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