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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아 Oct 25. 2022

캐나다에서 놀기 A-Z까지.

치열하게 지겹게 놀아보기.

기회가 될 때 무조건,

안되면 기회를 만들어서 더 놀자.

 

그게 내 인생의 모토(motto)이다.

왜 회사 휴가로 3박 4일 휴양지를 다녀오면 오전 근무 3시간 4분만에 리셋되는 것일까. 나는 캐나다에 와서 원 없이 신나게 놀 것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대학생 때는 시간은 있으나 돈이 없었고 회사 다닐 땐 시간도 없고 돈도 아까웠다. 휴직을 하고 다시 시간은 있으나 돈이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연륜이 터득시켜준 놀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1. 무엇이든 문화체험

한국처럼 캐나다도 지역 관공서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소소한 행사들이 워낙 많은데 한국에서라면 시간 부족으로 스킵했을 별거 아닌(!) 행사도 월간 캘린더에 빼곡히 적어놓고 부지런히 좇아 다녔다. 이런 행사는 주로 와주기만 해도 고마운 행사들이라 티켓도 필요 없이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회사 생활 좀 해보면 알 것이다. 관공서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가 욕 안 먹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 것들인지. 행사 질에 대한 걱정 없이 부지런히 좇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벽화 행사, 이스터데이 초콜릿 줍기 행사, 만두 축제, 퀄링 축제, 원주민 문화행사, 연어 회귀 축하행사, 이글루 쌓기 대회, 겨울 얼음조각 축제, 드라이브 스루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언젠가 카우보이 기념행사까지 찾아서 다녀온 우릴 보고 캐나다 친구는 본인도 가본 적 없는 행사라며 어떻게 그런 걸 찾아내는지 신기해했다. 퀄링 행사는 도착해보니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당황스러워하다 시간제한 없이 신나게 놀고 오기도 했다. 아마 현지인이라면 스킵했을 작은 행사들이 아니었을까. 외국이라 모든 게 문화체험이기도 했지만 아이들, 남편과 함께하는 축제는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기억하게 해 줄 특별한 추억거리가 됐다.

2. 자연놀이

매달 달라지는 캐나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놀이도 빠짐없이 챙겨 다녔다. 6월부터는 게잡이, 7월에는 블루베리 유픽, 8월에는 해바라기 유픽, 9월에는 사과 유픽, 10월에는 펌킨과 크렌베리 유픽, 그리고 연어 낚시, 11월부터는 메이플 시럽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먹고 겨울 내내 핫초코와 초콜릿 먹기. 스케이트 타기와 하키 구경하기. 다시 봄이 오면 방울토마토를 따고 여기저기에 널린 키가 큰 고사리를 따서 비빔밥을 만들어먹었다. 봄에는 캐나다구스를, 여름에는 곰을, 가을에는 코요테와 겨울채비에 들어가는 들판의 양 떼와 다람쥐를 보러 부지런히 좇아 다녔다. 한국에선 신발에 모래가 끼는 게 싫어서 모래사장도 못 걷던 아이는 맨발로 게잡이를 하고 씻지 않은 블루베리를 주먹으로 집어 먹으며 좋아했다.

3. 놀이터와 도서관, 레크리에이션 센터 도장깨기.

한번 갔던 놀이터는 두 번 안 간다. 는 각오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놀이터를 찾아다닌다. 어떤 놀이터는 집라인이 족히 200미터는 되는 듯 길고, 어떤 놀이터는 물놀이터와 함께 있고, 또 어떤 곳은 나무로만 만들어진 놀이기구로 가득 차 있다. 도서관도 어떤 곳은 그림놀이가 잘 되어있고 어떤 곳은 한글책이 많고 어떤 곳은 게임 종류가 많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을 보는 사이에 나도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왔는지 사진으로 찍고 공통점과 특이점을 기록해둔다. 또 우리나라로 치면 체육센터 정도인 레크리에이션 센터도 지점마다 특징이 있다. 어떤 곳의 수영장은 서핑 연습을 할 수 있게 파도풀이 되어있고, 어떤 곳은 하키 연습이 늘 있어서 하키 구경하기가 좋다. 또 어떤 곳은 실내 암벽등반 시설이 훌륭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도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놀이터와 도서관,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잘 놀고 나는 나대로 공공 문화 시설이 어떻게 다른지 보는 재미가 있다. 사실 다른 건 안 부러운데 몸치도 운동하고 싶게 만드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시설은 좀 부럽다. 국민 건강을 위해 우리도 구청 건물 말고 체육센터가 좀 더 멋있어지면 좋겠다.

4. 부지런히 멈추지 않고 여행하기

 외에도 매주 매달 부지런히 여행을 했다. 어느 날은  이상은  돌아다닌다, 하루만 집에서 쉬자는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앨버타주에  때는 록키산맥 벤프와 제스퍼를 주말여행으로, 공룡이 살았다는 드럼헬러는 왕복 6시간이 걸리는데 당일에 다녀오기도 했다. BC 주로 와선 미국 드라마에 나왔다는 스콰미시부터 검색창에 캐나다 BC 여행이라고 치면 나오는 모든 곳을 차례로 돌아다녔다. 주로 자연 명소라 아침 일찍 도시락   정도 싸고 차에 기름만 가득 채워 다니면 됐다. 그래서 우리  트렁크에는 365 선크림, 돗자리, 파라솔, 코스트코   박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여행 유튜버가 더 이상 여행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며 여행을 멈추고 유튜브 채널을 닫은 일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어떻게 여행 다니는 게 즐겁지 않을 수가 있지 의아했는데, 새로운 곳 찾아다니고 놀기 좋아하는 나도 이제는 집이 더 좋아져 버렸다. 진짜 원 없이 실컷 돌아다니다 보니 낯선 곳을 여행하는 ‘신기함’은 이제 즐겁지가 않다. 어디든 내 가족이 맘 편히 쉬고 웃을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최고의 휴양지가 된다. 아무리 예쁘고 좋은 곳이라도 아이들이 시큰둥하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도 유명한 ‘레이크 루이스’에 갔을 때도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연신 집에 가자을 외치자 우리 부부 마음이 지옥 같았다. ‘ 엄마 여기 이번 생에 다시 못 와. 좀 만 더 보자.’라고 애걸복걸을 해도 ‘엄마, 그럼 다음 생에 다시 와’ 라며 발길을 돌리는 아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정말 별거 아닌 곳도 아이가 신나게 놀아주면 거기가 관광 명소다.

우리 가족이 부지런히 놀 곳을 찾아다니며 바랬던 것은 우리 아이가 커서도 이 순간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여기에 왔을 때 가족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을 행운이었다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나는 죽을 때가 되면 휴직 동안 보낸 이 시간이 제일 많이 기억날 거 같아. 추억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이제 그만 놀아도 돼. 원 없이 놀았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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