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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아 Oct 25. 2022

캐나다 놀이터와 도서관

글로벌 아이들은 뭐가 다르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제일 많이 간 곳은 동네 놀이터와 도서관이었다. 캐나다 아이들, 그러니까 글로벌 아동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잠시 우리나라와 캐나다 아이들의 생활  가지를 비교하자면 놀이터의 형성부터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놀이터는 주로 아파트 단지 위주로 조성되는 반면 캐나다 놀이터는 마을 위주로 조성되어있다. 그래서 트윌리거라는 동네에는 트윌리거 놀이터가 있고 밀우즈라는 동네에는 밀우즈 놀이터가 있다. 하우스에 살든 아파트에 살든 상관없이  동네 아이들은 그곳에 모인다. 거의 학원을 다니지 않는 캐나다 아이들은 주로 놀이터에서 놀면서 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나라 놀이터와 다른 바닥재(주로 푹신한 나무 조각)부터 놀이터 기구 구성(철봉, 그네 등뿐만 아니라 눈썰매를   있는 인공 언덕, 여름에는 농구를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나 하키 운동을   있는 코트가 마련되어 있다)까지 한국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이곳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떻게 노는지 어떤 관심사가 친구를 만들어주는지 여러 동네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관찰하곤 했다.

놀이터 다음으로 가볼 만한 곳이 동네 도서관이다. 학교 교과서가 없는 캐나다에서는 동네 도서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 추천도서는 도서관 1열에 배치되어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되어있고, 읽기 수준별로 분류된 책들이 늘 메인을 차지하며 학생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국어(이곳에선 영어)를 더 공부하고 싶으면 교과서가 아닌 동네 도서관에서 수준별 책을 골라 읽는다. 또 학교에서도 도서관 책을 대량으로 받아서 매일 아이들에게 1~5권 정도의 책을 나눠주고 독서 리스트를 채우게 한다. 100권, 200권을 채울 때마다 스티커 선물, 연필 선물, 상장과 메달을 주며 독서를 독려한다. 하루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수학 숙제를 가져왔는데 알림장에 쓰인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수학 공부는 하루 5분을 넘기지 말 것. 책 읽기 시간이 우선입니다. 독서 후 남는 시간에 수학 공부를 하세요.’ 그런 독서 장려 덕에 우리 아이들도 잠시 여행을 가더라도 꼭 책을 챙겨가 독서 리스트를 채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그 외에도 유아동을 위해 도서관에는 그림놀이, 간단한 크래프트가 항상 테이블에 펼쳐져있고 정해진 시간에 비눗방울을 날려 아이들을 모은 뒤 도서관 한가운데에서 사서가 구연동화를 해주는 것이 일상적인 프로그램이다. 캐나다에선 캠핑장이나 해변에서도 책을 읽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놀이처럼 독서를 배우게 된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또 도서관에서 유행하는 책이 무엇인지도 내겐 공부가 되었다. 법적으로 만 12세부터 베이비시터 등의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캐나다 특성상 '베이비 시터'라는 소설책이 저학년 사이에서 스테디셀러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엉뚱한 히어로, 똥파리, 유니콘, 강아지, 고양이, 판다 등이 도서관 인기목록을 차지했다.


이 것들이 나에게 공부가 된 이유는 한국 아이들과 캐나다 아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원들은 ‘글로벌 유의사항’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었는데 해외 경험이 없는 회사 조직에선 그게 마치 불문율처럼 여겨지곤 했다. 예를 들어 외국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는 지저분한 걸 소재로 하면 안 된다거나(플라이 가이즈는? 똥파리가 주인공인 북미 베스트셀러이다) 고양이는 해외에선 비호감 동물이라든가(개비스 돌하우스는? 고양이 인형 세상을 다룬 북미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이다) 너무 여성적인 아이템은 성공이 어렵다(레인보우 매직 시리즈-요정 이야기-는 북미 아이들에게 필독서인 책이다) 등등 글로벌이라면 주의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의 관찰로 지켜본 캐나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웃기고 재미있고 멋있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해외살이를 하면서 이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외국 콘텐츠를 볼 때 더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생겼다. 예를 들어 미드 속 청소년들이 주로 '초코바'나 '사과'를 먹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짧은 리세스(휴식) 시간 동안 놀면서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간식으로 초코바와 사과가 딱이라는 사실. (우리 아이들도 매일 학교에 싸가는 간식이 되었다) 또 서프라이즈 에그는 한때 유행하던 완구가 아니라 부활절(이스터 데이)의 이스터에그였다는 점, 그래서 부활절의 산타 격인 토끼가 집안 곳곳에 숨겨놓는 계란 선물(이스터에그)에서 출발했고 크리스마스 선물만큼 북미 아이들이 기대하고 설레하는 명절 선물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해외 스타들이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지 않고 본인 옆구리에 끼워 안고 다니는 건 어릴 적부터 스포츠로 단련된 북미 여성들의 건강한 체력과 의외로 포장도로가 많지 않아 유모차보다 안고 다니는 것이 더 편하다는 점 등도 캐나다에서 지내며 새로 알게 된 것들이었다. 미드  'Modern Family' 에는 신호등 대신 'Stop' 표지판이 많은 북미의 교통신호 특성이 담긴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특성을 알고 보니 확실히 이해가 잘 되었다. 하지만 그런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 본들 미드가 재미없었을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도 모르는 외국인들은 왜 오징어 게임에 환호했던 걸까? 샌드위치 모양의 핫도그만 먹는다던 북미 사람들이 왜 한국 핫도그( 콘도그)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는 것일까?


이곳에 와서 나는 글로벌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했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주의사항만 알려주던 ‘글로벌'이라는 단어, 수년째 사업부 연간 목표에 들어있던 그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괜히 주눅 들어 한 발짝을 떼기 어려웠던 시간들을 말이다. 둘째 아이가 캐나다 수업 중에 '슈퍼윙스'와 ' 브레드 이발소'를 보고 와서 내게 물었다. '엄마, 근데 그건 한국 애니메이션 아니에요? 우리 캐나다 선생님이 요즘 재미있게 보는 거래요. 왜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 애니메이션을 봐요?' 그 질문에 나의 대답은 뻔하다. '응,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건 어느 나라 것인지 상관없이 보고 싶잖아.'


나는 왜 그 뻔한 것을 기어이 해외살이를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을까. 나는 그저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재미있는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는데. 글로벌이라면 왠지 다를 것이라는 타인의 기대에 부흥하려 가짜 글로벌을 좇고 있지 않았나. 확신 없는 '글로벌' 정의를 위해 오래된 외국자료 속을 헤매고 있지 않았나. 절대 공감할 수 없고 익숙하지 않은 해외 일상을 마치 나의 일상인 척 콘텐츠에 담으려 하지 않았나. 나에게는 해외 사람들이 글로벌이었지만 그들에겐 내가 글로벌인데, 나는 왜 타인의 글로벌을 배우고 싶어 했을까.


1년 해외살이가 끝나갈 즈음 나는 글로벌이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게 되었다. 빠삭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선 내가 글로벌이니까. 나는 그저 나의 것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게 글로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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