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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엄마에게서 나를 지키는 법

엄마의 삶이 멈춤이었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걸음을 보여주려 한다

by 다시 봄

나는 회피형 엄마가 버겁다. 엄마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어른의 단어를 늘 피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못해"라며 타인에게 결정을 미루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 탓을 하며 자신을 방어한다. 엄마의 세상에서 자신은 늘 선량한 피해자다. 편하게 살고 싶은데 주변이 나를 괴롭힌다는 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경제 활동은 일절 하지 않으면서, 엄마는 항상 돈이 없다고 불만이 많고, 아빠랑도 수십년 째 싸우고 있다. '일하면 몸이 더 아파진다'며 사회에 나가 무언가를 해 볼 의지가 전혀 없고, 공포를 증폭시키는 유튜브 알고리즘 안에 갇혀 자신의 무기력을 정당화 하기 바쁘다.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 저기 아프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건강을 위한 노력도 전무하다. 운동을 위해, 건강한 삶을 위해 지원해준다고 제안해도 개선의 노력은 없다.


1시간 40분의 도돌이표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지긋지긋한 도돌이표다. 서로 사랑하지도 않고 정서적 교류나 신뢰도 없고, 말만 하면 쌓인 상처로 싸움만 하느라 차라리 서로 없는 게 나은 관계. 엄마는 이 집안이 징글징글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핏줄을 이어받은 자식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럴거면 차라리 이혼하고 서로 그만 싸우고 편하게 살라고 해도, 내가 이제와서 그럼 어떻게 먹고 사냐며 오히려 나에게 원망을 쏟는다.


이번에도 엄마는 1시간 40분 동안 전화를 붙들고 아빠 욕을 했다. 벌써 네 번째 듣는 똑같은 레퍼토리다. 엄마가 원하는 건 하나다. 자신이 얼마나 짜증 나고 힘든지 알아달라는 것.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엄마는 아빠의 행동을 막기 위해 애쓴 적도, 대안을 제시한 적도 없다. 그저 일어난 일에 대해 불만만 쏟아낼 뿐이다.


상관을 안하고 싶으면 관심을 끄거나, 마땅한 대책을 세워 합의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엄마는 둘 다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십 년 전 사업 실패로 날린 돈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 돈만 있었어도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샀을 거라며 한탄한다. 자본을 어떻게 늘릴지, 현재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생산적인 고민은 없다. 그저 과거에 붙들려 현재를 갉아먹고 있다.


엄마의 30대와 40대도 똑같은 핑계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서워서 운전 못 하고, 힘들어서 일 못 하고, 늘 우울해서 누워있고... 엄마에겐 늘 '힘'이 없었다. 질병이 있던 것도 아닌데, 늘 우울하고 약했다. 나도 약한 체력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약함에 머무르지 않았다. 운동하고,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의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왔다. 몸이 고장 나면 조절해가며 버텼다. 엄마도 조금만 노력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학습된 무기력, 그리고 무책임한 낙관

엄마의 "아무것도 못해" 시전은 노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진다. "난 아빠보다 먼저 죽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니 노후 대비 필요 없다. 간병인, 요양원 다 필요 없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편안하게 잠든 채 죽을 거니까."


인간사가 기도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기에 최선을 다해 대비하는 것인데, 엄마는 안일하게 손을 놓고 있으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주변이 자신을 스트레스받게 하지만 않으면 편안히 죽을 수 있을텐데, 가족들이 자신을 괴롭혀서 병이 생겼다고 원망만 한다. 내가 더 이상 엄마의 감정받이 역할을 거부하자, 엄마는 자신을 '불쌍한 늙은이'로 포장했다가, 나를 '매정한 딸'로 몰아세웠다가, 다른 가족 욕을 하며 기어이 내게 감정 쓰레기를 쏟아내려 든다. 기본적인 앱 하나 사용할 줄 모르면서, 나이든 자신에게 '뭐라도 하라'고 하지 말라고 고집만 부리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센 척'하며 사는 딸의 속사정

얼마 전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주저함이나 두려움 같은 게 없어 보여."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그 무기력함을 극복하려고 누구보다 '센 척'하며 살았을 뿐이다. 내 속은 매일 전쟁이다. 남들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주저함도 공포도 많다. 간단한 포스팅 하나 올리는 것도 수없이 망설인다.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숨고 싶다는 유혹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


엄마에게서 받은 우울과 무기력의 유산을 끊어내기 위해 지난 20년 넘게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엄마를 만날 때마다, 그리고 그 패턴을 답습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아예 남이라면 이미 거리를 두었겠지만, 가족이기에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 만날 때마다 싸우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이들이 건강하게 변화할 가능성은 정말 없는 걸까?


공포의 대물림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다. 엄마와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날, 둘째 아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으이그~~~~ 진짜 지긋지긋해."


순간 소름이 끼쳤다. 엄마와 동생의 그 말투, 목을 눌러 내는 짜증 섞인 소리, 비관적인 억양을 내 아이가 똑같이 흉내 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그 그림자가,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까지 드리워지고 있었다. 나는 이 질긴 악연의 고리를, 이 부정적인 정서의 대물림을 어떻게든 막아야만 한다.


엄마와 싸우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엄마의 불행이 내 아이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방파제를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안의 '관리자 다람쥐'가 왜 그토록 숨차게 뛰어야 했는지. 엄마가 무기력하게 멈춰 서 있는 동안, 어린 딸이었던 나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나라도 대비해야 해,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해." 엄마가 하지 않는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내 안의 다람쥐는 지난 수십 년을 전력 질주해 왔다. 나의 부지런함과 치열함은 엄마의 무기력에 대항하기 위한, 눈물겨운 생존 전략이었다.


아이의 한숨 소리에 소름이 돋았던 이유도 명확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저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라는 내 깊은 무력감을 건드린 강력한 '트리거(Trigger)'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공포는 경보 장치일 뿐, 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할머니를 흉내 낸 그 순간은 오히려 나에게 신호를 준 것이다. 지금이 바로 이 질긴 고리를 끊어내야 할 결정적 타이밍이라는 신호를.


다음 상담에선 이 이야기부터 나누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분노나 한심함으로 반응하는 '지친 딸'이 아니라, 내 안의 단단한 'Self'로서 엄마를 대하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엄마를 억지로 바꾸려다 좌절하는 대신,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울 것이다.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게 하면서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싶다.


엄마가 보여준 삶이 '멈춤'이었다면,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줄 삶은 '두렵지만 나아가는 걸음'이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 내 안에는 무기력을 이겨낸 다람쥐의 성실함도 있고,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우아한 Self의 힘도 있다. 그 힘으로 나는 내 아이에게 엄마와는 다른 내일을 물려줄 것이다. 이것이 내가 택한 단단한 결단이며,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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