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이다.
군대에 가기 전
명동, 경리단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명동은 유투존 이외에는 상권이 망가졌었고, 밤 9시만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반면 바로 옆 남대문 메사홀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동대문은 불야성을 이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명동 중앙로는 노점상들로 가득 찼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됐다.
경리단은 육군 중앙경리단의 약자로 버스 정류장 이름이었을 뿐 이태원과는 다른 그냥 시골이었다.
주말에는 이태원에 놀러 가 옷을 샀고, 크라운 호텔 앞과 골목골목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대 후 나는 가로수길에 본사를 두고 청담, 로데오, 논현에 매장을 둔 회사에 다녔다.
가로수길은 당시 상가보다 사무실이 많은 곳이었다.
압구정 로데오는 심하게 핫했고, 청담동 명품거리도 많은 외제차로 막혔다.
그러나 논현동 가구거리는 그때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오히려 바로 뒷 골목 논현초등학교 앞은 많은 상점이 속속 들어차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나면서 서울 주요 상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리단길(경리단, 망리단), ~로수길(가로수, 샤로수, 뒤로수), 연남동, 힙지로 등이 젊은이들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상권이 변화하는 것은 간단하다. 기존 상권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새로운 곳이 대체재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권에서도 임대료 상승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새로운 상권이 계속 생성된다.
문제는 기존 상권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게 되고, 건물값 하락을 염려한 건물주들의 임대료 고수로 공동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내 권리금은 누가 책임지다는 말인가?
<뒤로수길>
<뒤뒤로수길>
최근 가로수길, 경리단길, 이태원, 강남대로, 광화문 상권은 이러한 절차를 밟고 있다.
가로수길이 너무 비싸지자 뒤로수길로 옮겨가고,
뒤로수길도 임대료 폭등하자 신사동 먹자골목, 아귀찜 골목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아이러니는 로데오의 대체재였던 가로수길이 비싸지면서 로데오가 다시 뜨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커다란 매장, 역세권의 좋은 입지, 막강한 홍보력을 무기로 삼은 대형 상점이 상권을 주름잡았다. 그러나 획일화한 상품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번지면서 작은 매장, 물어물어 찾아가야 하는 위치, SNS 입소문을 통한 홍보력을 가진 소형 상점들이 속속 등장했다.
결국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권에는 미래가 없다. 나는 그것을 ‘문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서울숲 카페거리나 힙지로, 구찌가옥 등이 있는 한남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구석지고 허름한 곳에 있어도 그 상권의 문화 콘텐츠 안에 녹아 있다면 사람들은 찾아온다.
명동, 가로수길의 공실률이 40%에 육박하는 것은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옛날에는 경기가 참 좋았다”고.
우스갯소리 같지만 단군 고조선이 가장 호황이었다는 말일까.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말은 팍팍한 현실에 위로는 될지언정 매출 증가엔 소용없다.
어느 시대이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권이나 아이템은 사라졌다.
창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누구나 생각이 비슷한 탓이다.
변화를 읽고 한 박자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이 절실한 이유다.